새해 벽두부터 대통령의 신년연설을 계기로 증세 감세논쟁이 뜨겁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최대문제로 구조적 양극화를 지적하고 해결책으로 재원 확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양극화 문제가 환란과 관련된 것보다는 지난 3년간의 참여정부의 실정의 결과이고, 오히려 신빈곤층의 확대를 더 큰 문제로 지적하는 듯했다.
양극화와 신빈곤층의 확대
양극화 문제와 신빈곤층 확대의 문제가 어떻게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양극화란 사회경제구조가 중산층(중간계층)이 무너지고 양쪽 끝이 확대되어 가는 오목렌즈와 같게 되는 것인데, 외환위기(환란) 이후 국가적 구조조정과정에서 부실하거나 경쟁력이 약한 기업이나 인력들이 퇴출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고, 살아남은 기업이나 인력들은 오히려 시장점유율이 확대되거나 소득이 증대된 것을 말한다.
반면에 신빈곤층의 확대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급진전으로 인해 이에 적응하지 못한 계층들이 경쟁력을 잃고 새로운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경우 두 가지 현상이 모두 공존한다.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나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이 환란 이후 급격히 악화되었고, 아직도 환란 전의 상태로 회복되지 못했다.
다만 2002년과 2003년에 다소 수치가 개선된 것은 김대중 정부가 무리한 소비 진작을 위한 카드버블정책을 쓴 결과 때문인데, 그 이후 버블이 붕괴되면서 오히려 지표가 더욱 악화되었다. 물론 참여정부 출범이후 국론통합정책 보다는 사회분열적 정책이나 성장잠재력 훼손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정치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일리가 있어보이나, 오늘날 양극화의 문제가 환란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이 문제에서 한나라당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우리 경제의 문제는 성장잠재력 훼손과 양극화문제로 압축할 수 있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나? 증세와 감세는 외형적인 논쟁적 방안의 차이이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해 나가면 세율을 손대지 않아도 세원은 훨씬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세금논쟁보다 어떻게 재분배효과가 높은 성장잠재력을 증대시키는가가 중요한 이슈인데, 정치권은 이를 놓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위로부터 아래까지 모든 부문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 방식에 실사구시적이고 정론적 원칙에 입각하기 보다는 감각적인 접근과 정치적이거나 정서적 접근만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사회 제반문제를 풀기 위해 사회협약적 접근방식을 채택할 모양이다.
사회협약적 해결방식 우려
이는 작년 초에 출범했던 반부패투명사회협약을 연상시키는 조치이다. 당시에도 반부패투명사회 실천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없다는 미명하에 출범시킨 협약체였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반부패투명사회협약의 출범을 전제로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한 일은 오로지 재계가 간절히 원했던 증권집단소송제 법안에서 분식회계를 2년간 유예하면서 적용을 배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두산그룹의 분식회계사건과 삼성그룹의 공정거래법 헌소제기사건 등으로 국민들의 실망만 커졌다.
따라서 협치(Governance)가 필요한 시대에 정치권, 정부, 재계 및 시민사회의 대표자들이 모여 사회협약을 맺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문제는 정리정략(政利政略)과 상리상략(商利商略)적 목적을 갖는 자들에게 혹시 시민사회가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신뢰가 쌓일 수 있도록 진실과 신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정책효율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사회 모든 부문에서 신뢰가 없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한다.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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