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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환율 하락이 주는 기회

입력
2006.02.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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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율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면서 수출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조사에 의하면, 환율이 950원 아래로 내려가면 많은 기업들이 수출을 중단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 편에서는 환율 하락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제기된다. 환율 하락이 수입 물가를 낮춰 국내 소비자의 구매력을 높인다거나 내수 기업의 수익성 증가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수출 기업은 어렵겠지만 내수 기업이 살아나 경기를 떠받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가 좀 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경제의 안정성이 확보돼야 한다. 첫째, 수출 부문의 구조조정이 완만하게 이루어져 구조적 실업이 최소화 돼야 한다. 둘째, 수출 기업의 경영 악화가 국내 금융 불안으로 전이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셋째, 수출 기업의 활동력이 줄어드는 만큼 내수 기업의 고용과 투자가 충분히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 조건과 현실 사이에는 분명 괴리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주력 업종이 상당 부분 중복된다. 수출 경기가 급랭하고 내수 부문의 경쟁이 심화되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밀려 도산하거나, 하도급 불공정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중소기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고용 경직성도 높기 때문에 수출 둔화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국내 기업들의 재무구조는 개선되고 있지만, 기업에 대한 시장의 신용평가 능력이나 기업 자신의 신용 관리 능력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예상보다 빠른 수출 경기 둔화가 신용 경색과 연쇄적인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셋째, 대표적인 내수 업종인 국내 서비스 부문은 생산성이 낮고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환율 하락으로 내수 기업의 수익성이 증가해도 그에 상응하는 투자와 고용의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점을 알면서도 환율 하락을 방어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데에 있다.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 하에서는 지나친 시장 개입이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한-미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결국 최선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면서 환율 하락의 긍정적인 면을 살리는 방법일 것이다. 내수, 서비스 부문에 대한 영업 및 투자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하며 고소득층 중심으로 소비도 많이 늘려야 한다. 이로 인해 수입이 늘어나면 무역수지 적자가 유발돼 환율 하락 압력은 약화될 것이다. 또 금융기관의 외환 거래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도 자제해야 하는데,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환 헷지 상품을 늘려 수출기업들의 전략적 선택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규제 완화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 노력을 전제로 한다. 특히, 수출기업들은 수출선 및 결제 통화를 다변화 해 달러화 급락의 충격이 분산되도록 해야 한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당연히 지속돼야 한다.

외환위기가 능력 이상으로 소비하고 투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급성 질환이었다면, 최근의 환율 하락을 둘러싼 국내적인 혼란은 구조적인 체질 개선이 미흡한 상태에서 능력 이하로 소비하고 투자하는 데에 수반되는 복합적인 만성 질환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나 개입을 줄이고 민간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면서 적절히 소비하고 투자하는 지혜를 키우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환율 하락이 주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노진호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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