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치료도 하고 작년에 만나자고 약속한 분들도 만나고 요양도 했다”.
4일 저녁 귀국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5개월 여 동안의 해외 체류를 이렇게 정리했지만 사실 구체적인 행적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삼성 측은 그동안 “건강검진을 받았다”, “지인을 만나며 사업구상을 하고 있다” 등 극히 제한적인 근황 만을 밝혔을 뿐 이 회장의 구체적인 체류 장소와 활동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4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비밀리에 출국했다. ‘폐암 치료에 따른 정기 검진’이 이유였지만, 이나마도 출국 사실과 함께 언론에 알려진 것은 10일 가까이 지난 같은 달 13일이었다. 당시는 ‘안기부 X파일’과 관련해 삼성 수사 불가피론이 높은 때여서 ‘도피성 외유’라는 눈총을 받았다.
미국 도착 직후 이 회장은 휴스턴에 있는 ‘MD 앤더슨 암센터’에 입원, 정밀진단을 받았고 삼성 측은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다. 삼성 측은 이 회장이 미국에서 폐암수술 후유증 진단과 치료, 요양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 지난해 연말께 일본으로 거처를 옮겨 지인들과 약속된 만남을 갖는 등 사적인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으나 어느 것 하나 객관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없다.
텍사스주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허리케인을 피해 하와이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으며, 지난해 11월 하순에는 막내딸(윤형)의 느닷없는 자살로 뉴욕에 머물렀다는 설이 돌았지만 삼성 측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국내에서는 지난해 9월 말 국정감사에 이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불출석 사유서를 내기도 했고 10월 초에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이 회장의 반응은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귀국 또한 전격적이었다. 삼성 측은 공항 도착 2시간 전에야 출입기자들에게 이 회장의 귀국 사실을 알렸다. 삼성은 이날 오전 서울항공청에 전용기 운항허가를 받은 뒤에도 여러 차례 탑승자 명단을 바꾸며 보안 유지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탄 이 회장의 귀국 모습도 뭔가 계산된 행동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했지만 이 회장은 “넘어져 발을 다쳤다”고만 했다. 삼성은 이날 회장 귀국에 대비해 경호원 200여명과 경찰병력 100여명을 공항에 배치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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