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해 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 민생 문제에는 관심 없는 이념 갈등…. 가진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어깻죽지는 축 늘어져만 간다. 우리는 이렇게 내려 앉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극단 ‘지구극 연구소’의 ‘복어’는 힘없는 우리 이웃에 관한 우화다. 그들은 왜 자꾸 망가져만 가는가. 느와르적 분위기, 희극과 비극이 교직된 내용, 상상력이 번득이는 볼거리 등이 연극의 맛을 느끼게 한다..
“라면을 배불리 먹을라면 말여, 일단 물을 그라스로 6잔 정도 부어 놓고 끓기 전에 미리 면을 잘게 뽀사 넣은 다음 5분을 내리 삶는 게 최선이여.” 걸쭉한 사투리를 써가며 부랑자들의 왕초가 강의를 한다. 지하 보일러실에서는 라면 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사회학적으로 도시 빈민으로 분류될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모종의 반역을 모의한다. 납세도, 병역 의무도 없는 완전한 자유의 세상 ‘신천지 공화국’을 세우는 일에 넋이 빠져 있다.
가스통을 동원해 농성을 벌이자는 제안 등 낯익은 장면들이 낙오자들의 입에서 터져나온다. “가스통을 더 사는 거유. 공화국 전체를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할 수 있슈. 아니면 노숙자들을 죄 모아다가 삭발시키고 집기들을 다 때려부수는 거유.”
지율 스님의 단식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있다. “시에서 골프장을 만든다꼬 하이까네 근처 수녀원 사는 수녀님이 그래 되면 숲에 사는 다람쥐 죽는다 카면서 건설 중지를 외치며 단식을 해대는 통에 마, 시장이 버티고 버티다 끝내 항복했다는…(후략).”
제목은 복요리 전문점 사장이었다가 식중독 사고로 망해버려 저들과 합류하게 된 ‘뽁사장’을 모티브로 삼는다. 위기에 처하면 몸을 부풀려 모면하는 복어의 허장성세가 밑바닥 인생을 닮았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소극장 공간을 최대치로 활용한 볼거리들은 객석을 극중 현실에 몰입하게 한다. 가로ㆍ세로 2m 크기의 수족관이 갑자기 나타나는 장면은 이 연극의 무대 메커니즘이 만만찮음을 보여준다. 왕초의 애인 여왕벌이 왕초의 학대를 받아 사산하는 장면에서는 붉은 천이 일시에 무대를 뒤덮으며 객석을 긴장시킨다.
연출자 차태호씨는 “가벼워져 가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중, 장년층을 위한, 깊이 있는 무대를 만들고자 한다”며 “이번 연극이 상처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뮤지컬과 아동극에서 10여년 활동한 그의 노하우 덕에 무대는 소극장 공간을 최대치로 살린 볼거리 아이디어로 풍성하다.
작가 김태호씨는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등 서민극 시리즈에서 입증된 입담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한국은 지금 첨탑 위에서 간들거리는 호화 주상복합 건물은 아닐까? 김태훈, 안순동, 함건수 등 출연. 17~6월11일 아리랑 소극장. 화~금 오후 8시, 토 4시 8시, 일 4시. (02)747-5016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