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낼 돈은 없고, 감옥살이를 줄이기 위한 돈은 있다?
정태수(83) 전 한보그룹 회장의 이상한 재산 계산법이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정씨가 내야 할 세금은 무려 2,493억여원이다. 그렇지만 최근 수년 동안 그는 단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에서 납부를 독촉하면 “돈이 없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국세청 앞에서는 빈털터리였던 정씨는 법원에서는 대단한 재산가가 됐다. 정씨는 최근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강릉 영동대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정씨는 이 재판 도중 횡령한 돈을 돌려주기 위해 종중 명의의 땅을 영동대에 담보로 제공했다. 인천 서구 왕길동, 당하동 일대의 이 땅을 부동산 신탁기관에 맡겼고 후에 부동산 개발 등으로 수익이 발생하면 1순위로 영동대에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정씨가 종중 땅까지 담보를 잡아가면서 돈을 갚겠다고 나선 것은 횡령 사건의 경우 되돌려준 금액이 얼마인지가 형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정씨로서는 국세청에게 ‘내 땅이 아니오’라고 했던 땅을 재판부에게 ‘내 땅’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정씨는 이 땅을 담보로 이미 3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옥살이를 줄여보려던 정씨의 바람과 달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황현주 부장판사)는 2일 정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72억원 횡령 혐의 가운데 60억원에 대한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영동대에 수익권 증서를 줬지만 이것만으로 횡령한 돈을 변제했다고 볼 수 없고 별다른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수익권 증서를 준 점과 고령인 점 등을 고려해 법정 구속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정씨가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수서 비리, 한보사태 등에 이어 일곱번째고 실형을 받은 것은 다섯번째다. 정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1997년 1월 구속된 이후 2002년 6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총 5년 9개월여 복역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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