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어머니 돌아오지 않고/ 편지만 뎅그마니 놓여 있는데/ 그 편지 들고서 옆집 가 보니/ 아저씨 보시고 한숨만 쉬네/ (후렴) 아저씨 말씀 못 미더워도/ 헬로 아저씨 따라 갔다는데/ 친구도 없네 무얼 하고 놀까/ 철길 따라서 뛰어나 볼까’ 지금은 원래 제목인 ‘혼혈아’를 되찾은, 김민기의 노래 ‘종이연’의 일부다. 길게 이어지는 타령조의 ‘라이 라이 라이~’ 후렴을 타고,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친구 없는 혼혈아의 설움이 짙게 전해진다. 같은 앨범의 ‘기지촌’과 함께 들으면 비감이 더하다.
■ ‘혼혈아’라는 말은 고유어 ‘튀기’나 일본어 ‘아이노코’의 음울한 색채를 많이 지웠다. 그러나 과거 많은 혼혈아가 기지촌에서 태어난 사실과 이민족을 오랑캐로 여긴 소(小) 중화주의 전통이 결합해서 빚은 바탕색을 다 지우진 못했다.
구조가 같은 ‘Mixed-blood’와 어감이 사뭇 다른 것도, 영어에는 이런 역사ㆍ문화적 맥락의 덧칠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요즘 ‘아이노코’나 이를 대체한 ‘혼혈아’ 대신 ‘하프’(Half)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도 외국어의 ‘투명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일본은 혼혈아의 주된 출생 배경이나 그들에 대한 기본적 태도가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사회적 혐오의 틈새로 일찌감치 동경 또한 싹튼 것이 달랐다.
1970년대에 이미 패션잡지 표지모델은 혼혈 소녀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아무로 나미에, 지넨 리나, 올리비아 루프킨 등 오키나와 출신 혼혈 여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마치 미모와 예술적 재능이 혼혈아의 특성인 것처럼 얘기된다.
한편으로 혼혈아를 매력의 표상으로 삼는 태도는 실재하는 사회적 편견과 ‘혈통 민족주의’의 폐쇄성을 호도해, 진정한 문제해결을 늦춘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 다니엘 헤니와 데니스 오의 인기가 치솟는 것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뛰어난 가창력과 피나는 노력으로 독자공간을 확보한 인순이와 소냐가 예외일 뿐, 인기 혼혈 연예인들의 얼굴은 뽀얗다. 그래서 서구 식민주의가 강요한 인종주의가 뒤틀려 표출되고 있는 건 아닐까.
동ㆍ서남아 노동력의 유입이 활발해 이미 노동시장의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이는 앞으로 한국사회가 까무잡잡한 피부의 혼혈아를 감싸 안아야 할 것임을 예고한다. 따라서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특정 혼혈아에 대한 돌출한 동경이 아니라, ‘혼혈아’란 말에 스민 차별의식과 그 바탕인 ‘혈통 민족주의’를 허무는 일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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