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52) 시인이 책을 냈다…,는 것은 전혀 별스러운 소식이 아니다. 1980년 등단해 일찌감치 10여 권의 시집을 냈고, 문학 시사(時事) 음악 역사를 넘나드는 글쓰기로 두루 넓은 출판의 영지를 확보해둔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 문화의 예술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단 이번 산문집 ‘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열림원 9,500원)은 적잖이 별스럽다. 몸이 구현하는 품위 있는 안정감과 천명(天命)을 본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사령부 전략지도 앞에 팔짱 접고 앉아 있어야 어울릴 법한 그가 불쑥 전선(戰線)으로, 그것도 최전선(最前線) 야전 벙커로 나선 격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명의 전사로서 이 시대 천격의 대중문화와 치매 수준의 문화 정치에 항전한다.
책에서 그는 방송ㆍ연예계, 가요계, 영화계 등 소위 ‘딴따라’계의 온갖 ‘무의미 지향의 풍토’들에 맞서 고독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소총수들을 만난다. ‘맨정신이 싫은 평화주의 테러리스트’ 전인권(가수), ‘너무 아름다워서 가여운’ 춤꾼 채희완(부산대 교수), ‘진지한 방송작가’ 박진숙, ‘미래지향의 사회주의적 고투’에 지침 없는 오기민(영화감독) 등등, 모두 해서 21명이다.
그들과 술자리에서 만나 서로 엉겨 나누고 풀어낸 위로와 성토, 웃음과 전망의 ‘할 말 안할 말’들을 기록한 게 이 책이다. 메모지도 녹음기도 없이 이어진 그의 술판은 자정이 초저녁이었을 테고, ‘필름이 끊기는’ 지경도 예사였을 것이다. 그 ‘지경’을 넘어 숙취의 아침(혹은 오후)까지 머리에 가슴에 남아있는 말의 건더기들, 마음의 무늬들이 이룬 산문의 한 ‘경지’가, 바로 이 책이다.
-문화적 살인이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낡은 도덕을 통치수단으로 온존시키면서 문화-예술의 저급화를 방치 혹은 조장 혹은 강제하는 현대의 모든 정치도 스탈린적이다.(전인권편)
-후, 쟤는 아직도 영화가 예술인 줄 알어, X쌔. 나 참…. 그 말은 너무도 적절하게 영화계 내부의 문제를 응축하는 거라서 지독하게 웃겼지만, 동시에 그 자조가 낭떠러지처럼 급진적이라서, 나오던 웃음 또한 그냥 목구멍에 절벽으로 각인되고 말았던 것이다.(오기민편)
-‘술=춤=노래’가 잠과 겹치고 겹침이 묻어나고 묻어남이 순정하게 응축된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손바닥을 한번 폈다. 아주 조심스럽게. 혹시 내가 정교할수록 얇은 예술의 처녀막을 손아귀로 해코지하고 있는 중일까봐. 그가 사라질까봐.(채희완편)
침이 튈 듯 생생하게 이어지는 구어체 문장 사이사이 사람과 예술에 대한 사유와 직관의 감상이 펼쳐지고, 급기야 진하디 진한 예술론까지 끼어들면, “…어 무슨 또 골치 아픈 소리? 너무 나갔나”식의 애드립으로 눙치고 빠지는 능란함은, 그의 몸에 밴 향기를 연상시킨다.
그가 책에서 집요하게 기대는 단어들-(비린)일상성, 일상성의 심화를 통한 당대성, 현실주의, 대중성, 변증법, 형식, 전망, 그리고 사회주의-의 어우러짐이 그 향기의 문자적 표현일 것이다. 그와, 책 속의 아름다운 문화 전사들이 그 싸움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끝내 승리하기를.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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