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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대통령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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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대통령의 귀향

입력
2006.02.0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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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이동으로 상징되는 한 바탕의 설 귀성(歸省)바람이 지난 뒤 귀향(歸鄕)을 생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잠깐 동안의 귀성은 할 수 있지만 귀향만은 뜻대로 할 수 없다.

고향은 단순한 지리적 마을이 아니라 어린 시절, 가족의 품, 열정과 방황으로 얼룩진 젊은 시절이다. 누구나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기회가 닿으면 어머니를 찾듯 귀향을 꿈꾸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잠시 고향 땅을 밟을 수는 있어도 이미 내 마음의 고향은 아니다. 일가친척은 흩어지고 나의 흔적은 지워졌으며 마을은 옛 모습이 아니다. 잠시나마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귀향은 문학의 영원한 모티브가 되어왔다.

●'귀향한 전직대통령' 전통 세웠으면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 몇 년이 흘러갔나, 그 뒤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으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문열은 자전적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 <강풍에 실이 끊겨 가뭇히 날아가버린 연처럼 그리운 날의 옛 노래도 두 번 다시 찾을 길 없으므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서러워했다.

토마스 울프의 동명 소설 ‘You can’t go home again’은 지명과 인명 등이 다를 뿐 모티브는 이문열의 소설과 거의 비슷하다. 고향, 어린시절, 가족, 낭만적 사랑과 방황 등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노래했다.

1960년대 유행했던 여성보컬 샹그릴라스의 ‘You can never go home anymore’는 뜨내기 사내의 사랑을 좇아 가출한 소녀가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면서도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음을 노래해 고향을 떠나 살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런 까닭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서 살겠다는 뜻을 자주 밝혔다. 지난달 19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아 고향 주민들에게 “퇴임 후 고향에 내려와 살겠다”고 했다.

노란 색 풍선과 리본으로 대통령을 맞은 주민들은 “대통령님 힘내세요”라며 격려했고 한 주민은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돌아오십시오”라는 당부도 했다.

200여명의 임업인을 초청한 지난달 24일 오찬 모임에서도 노 대통령은 고향 마을의 숲과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지난해 5월 농촌체험 관광마을을 찾았을 때도 “은퇴하면 내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갈 수 있는 시골에 터 잡고 살면 어떨까 궁리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미뤄 대통령의 귀향의지는 매우 강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의 귀향이 꼭 이뤄졌으면 한다. 대통령직 수행의 성공 여부를 떠나 노 대통령이 ‘귀향한 전직 대통령’의 전통을 세워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그러나 귀향에 성공하기 위해선 귀향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보고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귀향의 꿈을 갖는 것과 실제 귀향하는 것은 별개다.

시골별장 찾듯 고향을 찾을 수야 있지만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듯 고향에 돌아가 고향사람과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돌아갈 수 없는 사연들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고향사람들과 살가운 이웃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환영잔치가 끝나고 북적거리던 손님들이 떠난 뒤의 호젓함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빈손, 빈 마음으로 고향에 안겨야

누리던 부귀 영화 권세를 털어버릴 각오는 필수다. 빈 손, 빈 마음으로 돌아가야만 고향 품에 안길 수 있다. 왜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도 귀향하지 않았는지 곰곰이 새겨야 한다.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에게 굽신거리는 게 싫어 태수 직을 버리고 귀향하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노래한 도연명(陶淵明)의 세계는 아닐지라도 ‘길을 떠났던 나그네가 먼 여행에서 돌아온다.

눈에 익은 성문이 보이고 아낙네 아이들이 강기슭에서 고향사투리로 얘기를 한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17세기 중국의 비평가 김성탄(金聖嘆)이 열거한 ‘不亦快哉 33則’의 하나) 정도의 자세는 되어야 한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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