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31일 국정연설을 통해 제시한 ‘에너지 구상’의 현실성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석유 중독증’에 걸렸다며 타개책으로 2025년까지 중동 산 석유수입을 75% 이상 줄이고 에탄올 등 대체 에너지를 집중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수입 원유의 약 20%을 중동지역에서 사들이고 있다.
당장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섰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일 OPEC 관계자들이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걸프지역의 원유생산 및 정유능력 향상을 위한 투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에드먼드 다우코루 나이지리아 석유장관은 이날 “국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협력이 이뤄져야 할 에너지 문제는 일방적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며 경계심을 보였다.
OPEC 실무진들 사이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립적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동 국가 중 미국에 대한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출했다. 워싱턴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는 “부시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미국이 중동산 석유수입을 줄이면 사우디도 산유량을 감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미_사우디간 맹방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부시 대통령이 중동이라는 특정 지역을 지목한 것에 대해선 핵개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을 고립시키고 중동정세에 대해 느끼는 미국민의 불안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부시 대통령이 대체 에너지로 옥수수 등 곡물, 사탕수수 등에서 추출하는 알코올인 에탄올을 강조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부시 대통령은 6년 이내에 에탄올이 실용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이것부터가 회의적이다. 옥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단가가 너무 높고 에탄올 운송 파이프라인의 설치가 어렵다는 등의 난제가 산적해 있다.
수소차의 경우도 “현재 기술로는 대당 가격이 70만~100만 달러나 된다”며 상용화가 요원하다는 것이 자동차업계의 지적이다. 이밖에 태양열, 풍력에너지, 바이오 디젤, 하이브리드카 등의 대안에 대해서도 대부분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오히려 미국인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선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의 강화, 휘발유세 인상 등이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시 대통령이 휘발유세 인상 등에 소극적인 것은 결국 그가 정유업계와 유착관계에 있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정치적 제스처에도 불구, 실질적인 변화는 미미하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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