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의 중소 건축업체인 A사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2000년 4월부터 직원 월급도 주지 못하게 됐다. 같은 해 12월 국민연금 체납액이 수천만원에 이르자 국민연금관리공단 직원이 찾아와 “사채를 내든 어음을 끊든 빨리 연금을 내라”며 종용했고 A사는 할 수 없이 3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했다. 그러나 3개월 후 어음을 갚지 못하자 공단이 어음 연장을 거절하면서 회사는 부도가 났고 회사 운영도 중단됐다.
이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2004년 직원들이 뭉쳐 회사업무를 재개하자 이번에는 공단이 A사 당좌계좌에 대해 1억원의 압류를 걸었다. 체납액에 이자까지 계산한 액수였다. 회사는 결국 사채를 얻어 1억원을 납부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공단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및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며 “비슷한 사정으로 부도난 기업이 이 지역에만 10여 곳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중소 건축업체 B사도 지난해 연금을 체납했다가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어렵게 공사를 따냈지만 이후 공단에서 당좌계좌를 압류하면서 수주가 무산됐다.
발주업체에서 B사의 압류 사실을 안 뒤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압류란 어디까지나 체납액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막 자금의 물꼬가 트이려는 상황에서 압류를 하는 것은 회사 문을 닫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연금을 체납한 영세업체들이 공단의 무리한 압류 조치로 경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체납보험료가 압류된 사업자는 7만3,195곳이고 액수는 6,549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무리한 압류라는 것이 기업체들의 설명이다.
이는 연금 지역가입자의 경우 납부유예 등 체납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사업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체납은 곧 압류로 이어진다.
특히 당좌계좌에 대한 압류는 업체에게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압류 시 공단은 복지부의 승인을 거치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공단이 연금 체납을 이유로 당좌계좌를 담보로 삼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납세자연맹 최원 변호사도 “사회보장이라는 연금의 본래 취지에 비춰 볼 때 당좌계좌를 압류하는 것은 법률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이라며 “무리한 행정으로 인해 생계나 사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반마저 무너뜨리는 것은 가혹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기업이 부도날 경우 연금 체납액이 국세와 지방세에 비해 우선 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미리 압류를 거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다만 당좌계좌 압류를 통해 미수금 등 장래 발생하게 될 채권까지 미리 압류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단이 어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가급적 압류 조치까지 가는 것은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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