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 주부 C씨가 진료실을 찾은 것은 만성 통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C씨는 병원마다 “이상이 없다”, “약간의 이상은 있지만 그것 때문에 그렇게 아플 리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C씨는 급기야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으니 정신과로 가라”는 권고를 받고는 분개했다고 합니다. ‘아파서 죽겠는데, 틀림없이 어디 이상이 있어서 그럴 텐데, 정신과로 가라고?’
사실 C씨의 이런 반응은 일반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 통증이 아니면 심인성 통증이라는 이분법이 일반인들에게는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증에 대한 이런 이분법은 역사적으로 논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통증(pain)의 어원은 ‘형벌’이라는 뜻의 라틴어 ‘poena’입니다. 옛날 작가들은 통증이라는 말을 고통, 고뇌라는 두 가지 뜻으로 혼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7세기에 들어 마음과 몸의 이분법을 주장한 철학자 데카르트 이후 통증은 신체적 병리로부터 비롯되는 증후라는 의견이 우세해졌습니다. 하지만 프로이드나 브로일러 같은 근대 정신병리학자들이 등장해 심리적인 요인으로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심인성 통증으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과 몸, 그리고 심인성 통증과 신체적 통증이라는 양극단의 태도는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다가 최근에 와서는 융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설명되지 않는 통증’을 가진 C씨와 같은 분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신과 진료를 불편하게 여기는 C씨에게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모든 만성통증은 다분히 신경성입니다. 신체적인 원인에 의해서 시작된 통증이 오래되다 보면 뇌신경을 비롯한 신경계에서는 통증에 민감성이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그리 심하지 않은 원인에 대해서도 매우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원인이 해결된 후에도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 이상 없는 신경성 통증이니 정신과로 가세요’라는 의사의 말은 다행히 주요 장기 자체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아파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이 없는데 아플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 ‘기능성 통증’이나 ‘신경성 감각 이상’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특정 검사를 통해서 측정할만한 기술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정신과에서 진료를 해야 할까요. 이는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뇌신경 관련 약물을 써서 좋아지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통증을 가진 분들이 모두 정신과로 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사들의 경험상 설명되지 않는 통증이나 감각이상은 여러 진료과목에서 치료가 가능하고 정신과도 그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정신과에 온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정신과에서 하는 통증클리닉에 온 것이라 여기시면 됩니다.”
장황한 설명을 들은 뒤 C씨는 ‘정신질환’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경성 진통제’라 할 수 있는 항우울제를 복용한 후 증상이 현저하게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C씨에게 한 설명은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의 절반만 이야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성 통증의 경우 정신적ㆍ심리적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대인관계, 경제적인 문제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C씨의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호전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어왔음을 C씨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또 오랫동안 통증으로 고생하며 건강을 걱정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우울증상이나 불안증상이 역으로 C씨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신체적인 원인이나 정신병리의 유무에 상관없이 과거의 상실이나 상처, 죄책감, 표출되지 않은 공격적인 충동 등이 만성 통증의 밑바탕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해야만 만성통증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과 몸’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몸도 아프고, 몸이 아픈 사람은 마음도 아프기 마련입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윤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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