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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믹스 &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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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이야기 - 믹스 & 매치

입력
2006.02.0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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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상식파괴’와 같은 말들이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의 ‘코드’를 잘 대변해 준다.

이는 비단 정치권의 추세일 뿐 아니라 대중 언론이나 패션을 포함하는 문화 전반을, 국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해 가고 있는 또 하나의 가치가 되고 있으며, 몇 해 전 겪었던 경제위기 이후 유난히 눈에 띄기 시작한‘믹스 앤 매치’,‘퓨전 열풍’,‘절충주의’ 등의 표현들과도 그 맥을 함께 한다.

옷 한 벌을 새로 사지 않고 입던 옷과 유행하는 액세서리를 섞어(믹스) 조화(매치)시켜가며 주머니 사정을 다독여 본다든지, 매일 먹는 고추장에 케첩을 섞고 국수를 볶아내어 별미를 만들어 외식비를 줄여본다든지 하면서 돈 없는 시대에 ‘절충’하는 법을 우리는 수년 간 익혀 온 터다.

그러면서 생겨난 가치는 바로 ‘틀을 깨는 사고(思考)’. 오랜 시간동안 지켜 왔던 많은 분야의 많은 일들에 대하여 ‘왜 안 되는데?’‘왜 꼭 그렇게 해야 하지?, 그 법은 누가 만들었는데?’하는 의문들이 생겨났고, 내 몸에 내 맛에 내 상황에 맞는 ‘변형’을 위해 기존의 가치나 상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흐름이 요리를 하는 내게는 ‘퓨전 요리’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으로 대변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반죽에 불고기나 김치를 올린 한국식 피자나 일본식 샐러드에 두부 대신 담백한 모짜렐라 치즈를 더한 요리들 말이다.

퓨전(fusion)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보면, 물리학에서 ‘용해, 융합’을 일컫는 용어라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퓨전 요리는 요리 방식이나 맛의 믹스 앤 매치라 할 수 있겠다.

단, 마음 내키는 대로, 내 스타일대로 섞어찌개를 만드는 것이 ‘퓨전 요리’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내가 요리를 사사 받은 프랑스인 교수는 언제나 정통 요리와 전통 문화의 가치를 옹호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Fusion is confusion(퓨전은 곧 혼란이다)!”

▲ 코코넛 커리 파스타

며칠 전, 유동 인구가 많은 어느 골목에 ‘퓨전 롤 집’이라고 개업을 하여서 들어가 보았다. 마침 영화를 보고 나온 터라 배가 상당히 고팠던 나는 그 집의 대표 메뉴라는 ‘롤(김밥처럼 원통 모양으로 말아낸 밥 속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한입 크기로 썰어 낸 밥 요리)’을 하나 주문했다. 십 분이 채 안돼 테이블에 도착한 ‘롤’은 그런데, 그 모양새부터 요상했다.

아보카도와 새우튀김 등 고유의 맛이 풍부한 재료들을 넣고 말아낸 밥 위에 초고추장이 뿌려져 있었던 것! “상식적으로 새우튀김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요?”묻는 나에게 점원은 “초고추장이 아니라 식초를 넣은 고추장 소스입니다.”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소스’란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쉽고 흔해졌는지, 회 센터에서 짜주는 초고추장이 분명한데 이 레스토랑에서는 ‘특제 소스’로 불리고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맛을 보니, 뜨겁고 기름진 새우튀김을 감싼 차가운 밥 그리고 고추장 ‘소스’가 입안에서 따로 놀고, 목구멍으로 삼킨 후에는 혀에 텁텁한 장맛만이 남아서 방금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도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덜 혼란스러운 퓨전 요리의 비결은 무엇일까?

믹스와 매치를 하는 와중에도 식재료의 맛을 지켜내고, 요리의 ‘기본’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삶아 낸 파스타면은 그 굵기에 따라 어울리는 소스가 각기 다르다. 가느다란 면은 소스 없이 올리브유와 마늘만으로 볶기만 해도 그 향이 면에 스며들고, 그보다 굵은 면에는 토마토를 으깨서 만든 묽은 소스를, 좀 더 굵은 면에는 다진 고기를 넣은 걸쭉한 소스를, 칼국수처럼 넓은 면이라면 유지방이 풍부한 크림소스를 매치시킨다.

즉 소스를 퓨전화시킨다 해도, 어울리는 면의 굵기와 소스의 농도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마늘 몇 쪽에 볶기만 해도 맛이 배는 가느다란 면에 간장을 졸여 만든 불고기 ‘퓨전 소스’를 매치시키면 그 맛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면의 맛은 사라질 터이다.

생크림과 버터로 만든 진한 소스에나 어울리는 넓적한 면을 겨자를 묽게 희석시켜 만든 ‘퓨전 소스’에 버무리면 면의 밀가루 맛만 입에 남을 것이고. 만약 중간 정도의 농도에 어울리는 스파게티 면을 커리 소스에 매치시키고 싶다면, 커리의 강한 맛을 코코넛 우유로 달고 연하게 완화시켜 준비하면 좋겠다.

▲ 유부 감자

비교적 손쉽게 준비할 수 있는 유부 초밥. 찬밥만 있으면 단초 물과 깨를 넣어 쓱싹 비비고 유부에 넣어 쥐면 된다. 시판되는 유부는 튀겨 낸 다음 달고 짭짤하게 양념되기 때문에 설사 맨 밥을 채워 넣는다 해도, 그 맛이 심심하지는 않게 된다.

밥 대신 유부 속을 채울 수 있는 재료는 또 무엇이 있을까? 밥과 같은 탄수화물 성분 가운데 담백한 맛과 포만감이 쌀 만큼 근사한 감자는 어떨까?

서양식에서 반찬 격으로 등장하는 으깬 감자는 푹 익힌 감자에 버터를 넣어 부드럽게 으깨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되는데, 여기에 상큼한 오이 피클을 다져 넣고 유부에 넣으면 초밥과는 또 다른 맛을 내면서도 기존의 공식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게 된다.

정해진 틀이나 상투적인 가치에 도전하는 것은 생명력 넘치는 시도이다. 다만 퓨전 요리든, 입던 옷 리폼이든, 개각이든, 믹스 앤 매치를 할 때는 그 것이 ‘융합(fusion)’인지 '혼란(confusion)'인지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코코넛 커리 파스타

스파게티 300그램, 커리 3 큰 술, 코코넛 밀크 2 큰 술, 감자, 양파, 피망, 당근, 새우, 버터

1. 냄비에 버터를 달구고 같은 크기로 썬 양파, 당근, 감자, 피망을 볶는다.

2. 1에 물과 커리를 넣고 원하는 농도로 조절한다.

3. 2를 걸쭉하게 끓이는 동안 스파게티를 끓는 물에 삶아 건진다.

4. 2의 야채가 다 익으면 코코넛 우유를 넣어 맛과 농도를 맞추고 3의 면과 섞는다.

▲ 유부 감자

감자 1개 반, 유부 5장, 버터 45그램, 소금, 피클

1. 감자는 푹 익힌 다음 버터를 넣고 으깬다.

2. 1에 소금간을 하고 잘게 다진 피클을 섞는다.

3. 뜨거운 물에 데치듯 씻어서 꼭 짜낸 유부에 2를 채운다.

*팬을 달구어 3을 한번 지져 내듯 데워 먹어도 좋다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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