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지명자가 31일 의회 인준을 통과함으로써 미국 대법원의 이념추가 확연히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상원은 이날 보수파로 분류되는 얼리토 지명자를 58대 42로 110번째 대법관으로 인준했다.
퇴임하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재임 24년 동안 대법원 내 보수와 진보의 중심을 잡는 ‘균형추’역할을 해왔다. 여성으로서 첫 대법관 자리에 올랐던 오코노는 낙태, 소수자 우대, 선거자금법, 사형제 등 민감한 사회문제에서 양 진영을 오가며 대법원의 이념적 균형을 맞춰왔다. 모두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돼 있는 대법원은 보수, 진보파가 각 4명씩 양분해 왔다.
보수파인 얼리토가 균형추 역할을 해 온 오코너의 자리를 승계함에 따라 낙태 안락사 등 이념적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보수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은 이 때문이다. 보수진영으로 분류되는 대법관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안토닌 스칼리아, 클레런스 토머스, 앤서니 대법관 등이다.
반면 존 폴 스티븐스, 데이비드 수터,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스티븐 브레이어 등 진보파로 분류되는 4명의 대법관은 다수를 점한 보수파에 맞서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이 같은 보수_진보 구도와는 다른 시각도 제기된다. 보수파로 분류되는 케네디 대법관이 오코노를 대신해 새로운 균형추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케네디 대법관이 대체로 보수적인 판결을 내려왔지만 동성애 권리나 사형제,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견지해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대법관이라며 대법원이 ‘오코너 코트(O’Connor Court)에서 케네디 코트(Kennedy Court)’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케네디 대법관이 대법원의 판결을 좌우할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됐다는 뜻이다.
미국 대법원을 공부한 파멜라 카르란 스탠퍼드대 법학과 교수도 “얼리토의 등장으로 케네디 대법관이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케네디 대법관이 앞으로 어떤 판결을 내릴 지는 다음달 1일 열리는 텍사스 주선거구 조정안에 대한 심리가 판단준거가 될 전망이다. 톰 딜레이 전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발의해 2003년 주의회를 통과한 선거구 조정안을 민주당측은 헌법에 위배되는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케네디 대법관은 “당파적 선거구 조정은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장하는 연방법원의 전범 재판 관할권, 부분출산(partial birth) 낙태 금지법에 대한 위헌 심리 등도 케네디 대법관의 결정에 따라 향방이 좌우될 전망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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