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에 대한 ‘위험한’ 상상이 시작됐다. 이 세기의 들머리에서 2,500년 전의 공자와 제자들을, 유학의 근본이라는 논어를 의심하고 다시 보자는 것이다. 그런 상상의 일단을 전공 학자가 소설로 적었다. 청주대 한문교육과 임종욱(44) 교수의 장편소설 ‘소정묘 파일’(달궁 발행)이다.
정색을 하고 덤벼든 학술서가 아닌 만큼 눈 부릅뜨고 대거리하기에는 어색하지만, 그 전언의 전복성이 만만찮고 개연성이 결코 허술치 않다. 도도하고 생생한 유림의 전통을 생각컨대 심히 불편해 할 법도 하다. 책에서 공자는 인본(人本)의 성인이기 앞서 정적 제거에 냉혹한 출세ㆍ권력지향적 인물이며, 애제자 안연은 스승 암살을 기도한 패륜아로 그려진다.
소설은, ‘다빈치 코드’ 등 유수의 성공한 팩션(faction)들이 그러하듯, 현대와 과거의 시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며 이어진다. 한문학자와 그를 둘러싼 학문사회 내부의 씁쓰레한 욕망들이 부딪치며 연쇄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공자 시대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도 현대서사와 멀찍이, 그리고 나란히 이어진다.
두 흐름이 합수하는 지점이 ‘논어’다. 엄밀히 말해, 공자 사후 떠돌던 여러 판본의 논어들 가운데 전한(전漢) 말 장우라는 이가 정리한 ‘노(魯) 논어’를 중심으로 편찬한 교정본이고(‘한서’ 기록), 주자가 주해한 논어 집주(集注)다.
사건은 노나라 학자인 대부(大夫) ‘소정묘’ 주살 사건에서 비롯된다(사마천 ‘사기’). 당시 출세가도를 달리던 54살의 공자는 노나라의 법무장관 격인 대사구(大司寇)였다. 그는 소정묘에게 ‘풍기문란’ 죄를 씌워 처형한 뒤 장례를 금하고 시신을 궁궐 앞에 사흘 동안 매달아두게 한다. 소정묘는 신흥 귀족 권력의 핵심 인물로 공자와 맞선 인물로 그려진다. 소정묘 학파의 은밀한 복수가 시작되고, 공자의 제자 안연이 수제자 경쟁에 얽히며 그 공모에 가담, 스승 살해를 기도한다는 것이다.
논어에 언급된 안연은 공자가 ‘학문을 사랑하는 나의 유일한 제자’라 칭찬한 수제자이자 청빈한 사색가였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공자의 가르침을 체현한 순수 화신이다. 유림이 지금도 아성인(亞聖人)으로 존숭하는 그는 32살에 죽는다. 하지만 그의 사인은 불명확하다. 사료의 기록도 없다. “논어 속의 안연은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기계적인 언어는 잘 다듬어진 경구이긴 하지만 육성처럼 들리지는 않죠. 소리에 침이 튀지 않아요.”(2권 128쪽)
작가는 안연이 사후 우상화한 인물이라는 의심을 작품에서 사뭇 진지하게 펼쳐놓고 있다.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록이다. 유학 정신의 실천 지침서이자 자료집이다. 그간 학계는 논어를 두고, 논리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으며, 공자의 개념 설명 역시 상대에 따라 다르고, 내용의 깊이 또한 일정치 않다며 내심 찜찜해 하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거꾸로 “그래서 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는 상찬이 지배적이었다. 작가는 ‘논어’가 공자 사후, 그의 제자 및 후대 학자들에 의해 왜곡됐고, 주자에 의해 결정적으로 왜곡된 채 굳어졌다고 본다.
“공자와 논어를 폄훼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의 전모가 아닐 수 있고, 부분적 진실은 거짓의 다른 이름일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자 한 것입니다.”
소설에서 작가는, 공자의 마부로 수레를 끌며 수행한 ‘번지’라는 인물이 남긴 일기, 곧 ‘제2의 논어’가 은밀히 현대까지 비전(秘傳)돼 왔으며, 그래서 그 책으로 하여 현대의 추악한 사건들이 일어난 것으로 그리고 있다. 물론 그 책은, 적어도 현재는 풍문으로조차 거론된 적이 없는 ‘소설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누구도 “없다”고 확언할 순 없지 않을까. 또 그것은 실체로서의 ‘책’이 아닌, ‘해석’일 수도 있다. 정신은 끊임없이 해석됨으로써 새롭게 태어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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