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즈의 시선’ ‘안개 속의 풍경’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플로스는 1960년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국립영화학교(IDEC)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는 1년 뒤 교수들과 격렬한 말싸움을 벌인 뒤 학교 문을 박차고 나온다. 오갈 데 없던 그는 영화를 수집ㆍ보관ㆍ상영하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검표원으로 일하며 고전영화를 독학한다. 2004년 부산영화제를 찾은 그는 “나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키운 것은 ‘시네마테크’였다”고 털어놓았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수혜자는 앙겔로플로스 뿐만은 아니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클로드 샤브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일군의 프랑스 감독들은 청년 시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만나 격론을 벌이며 영화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이들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얻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세계 영화사를 뒤흔든 이른바 ‘누벨바그 시대’를 열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광의 안식처이자 미래 영화인력을 길러내는 또 다른 영화학교다. 국내에도 90년대 ‘영화공간1895’ ‘문화학교서울’ 등의 단체가 생겨나 시네마테크 운동에 불을 지피며 새로운 영화문화를 꽃피웠다.
국내의 대표적인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3억5,0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4,000만원의 적자를 봤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낙원동 옛 허리우드 극장으로 자리를 옮긴 게 큰 타격이었다.
이전비가 만만치 않았고, 상영공간이 바뀌면서 관객수가 줄었다.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등 스타 감독들이 발벗고 나서 후원금을 모집하고 있지만 목표액 1,000만원 달성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네마테크의 주요 기능인 필름 라이브러리 구축은 언감생심이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스크린쿼터 축소에 따른 후속 대책으로 시네마테크 활동 강화를 포함한 예술영화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서울아트시네마측은 선뜻 반기지 못한다. 정부의 지원 약속이 공염불로 그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를 줄이는 대신 예술영화를 장려해 한국영화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장담…. 그러나 화려한 수사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디아.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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