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의 정ㆍ관계 진출에 대한 비판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경만 서강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교수들을 향해 “제발 상아탑에 갇혀 지내라”고 촉구했다.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는 최근 “학문이란 벼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옛날 관학관(官學觀)의 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풍토”라고 개탄했다.
언론인들의 비판도 매섭다.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했거나 참여하려고 애쓰는 교수들을 ‘지식보따리상’으로 부르는가 하면, 정ㆍ관계에 진출하려는 교수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시간강사의 처지도 생각해 휴직 처리를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사표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교수의 정관계 진출 부작용
나는 한때 ‘언론인ㆍ교수ㆍ시민운동가 정ㆍ관계 진출 금지법’을 만들자는 주장을 한 적도 있다. 당시 나의 문제의식은 언론인ㆍ교수ㆍ시민운동가 등에 의해 주도되는 공공 담론이 각자의 정ㆍ관계 진출을 염두에 둔 정략과 탐욕으로 오염돼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점을 강조하고 싶어 일종의 풍자로 해본 제안이었으니, 뒤늦게나마 크게 놀라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교수의 정ㆍ관계 진출 문제는 딜레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는 뜻이다. 정작 문제는 정ㆍ관계 진출 그 자체가 아니라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동기에 있다. 입신양명은 원래 좋은 의미였지만, 이미 조선시대에 타락하기 시작해 오늘날엔 개인과 가문의 영광을 탐하는 출세주의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입신양명보다는 진실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충정으로 정ㆍ관계 진출을 원하는 교수들도 있다. 언론인과 시민운동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전업은 정ㆍ관계의 쇄신과 활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거니와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전업이 예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시적으로 대량 발생하고 있으며, 또 그들의 정ㆍ관계 진출 동기를 판단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바로 여기서 직면하게 되는 쟁점 중의 하나가 고위 공직자의 대우 문제다.
고위 공직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면 최고급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고위 공직을 출세의 도구로 여기게 되는 문제가 있다. 반면 고위 공직자에게 매우 박한 대우를 해주면서 오직 ‘명예’와 ‘애국심’만으로 버티라고 하면, 출세주의자들을 몰아내는 효과는 있겠지만 최고급 인력을 끌어들이는 건 어렵게 된다.
사회적 수익-비용 계산엔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우선 한국 특유의 ‘입신양명’ 문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자신의 내면 세계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예컨대,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는 맛)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자녀의 결혼과 부모의 장례도 그 행사 자체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드느냐 하는 숫자에서 자신의 살아온 과거에 대한 평가와 미래의 전망을 내리며, 남들 역시 그렇게 본다. 반드시 입신양명을 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또 ‘정치 과잉’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출세주의 문화 재고해야
‘입신양명’ 욕망은 한국정치판의 주요 동력이다. 오래전부터 개혁이 외쳐져온 공기업이 구태의연한 모습 그대로인 것도 공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수백여개의 벼슬 자리라고 하는 자원이 없이는 정치행위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개혁’을 생명처럼 아는 정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나온 여론조사들은 예외 없이 국민의 정ㆍ관계에 대한 신뢰도가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가 있을 때마다 신뢰도는 더욱 떨어진다. 그들이 권력과 더불어 금력도 갖고 있다는 데 분개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걸 한국인 특유의 평등주의 정서 때문이라고 가볍게 넘겨도 좋은 것인지 무겁게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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