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은 이따금 해도 중학교 동창 모임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중학교 친구들 10여명이 만났다. 1학년 때 영어선생님도 모셨다.
선생님은 숙제를 엄청 많이 내셨다. 여름방학 숙제로 책을 20번 써오라는 실현 불가능한 숙제를 내기도 했다. 쓰기 싫으면 외워오라고 했다. 그러면 그걸 20번 쓰느니 어떻게든 책을 통째로 외워간다. 다는 못하더라도 절반만이라도 외우려고 노력한다.
한 친구가 선생님,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습니까? 물으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지금과 달리 중학교에 들어와 처음 ABC를 배우는 너희들에게 다정다감하게만 하다보면 인쇄체 대문자 소문자, 필기체 대문자 소문자만 가르치는데도 한 달은 더 걸린다고.
영어는 막 시작할 때 기초문장 100개만 머릿속에 외우고 시작하면 그게 평생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그래서 막 시작하는 일학년이기에 더욱 무섭게 했노라고 하셨다.
그날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36년 전 그렇게 외운 영어 교과서의 한 단원을 다시 선생님 앞에서 더듬더듬 외워보였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길이 그냥 온 길이 아니다. 요소요소에 저런 은사님들이 계셨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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