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으로 쉴 새 없이 울리는 독촉 전화, 친정 어머니의 전 재산인 한 칸짜리 전세방마저 압류하겠다던 추심원들의 으름장…. 우리나라 위치 추적 장치가 그렇게 잘 돼 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신용불량의 늪에서 헤어난 사람들의 수기를 모아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최근 책으로 엮어냈다. 신용불량자들이 당해야 했던 살인적인 빚 독촉의 공포와 신용불량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애착이 눈물 자국 생생하게 묻어 있다.
카드 빚 2,000만원을 8년간 나눠 갚기로 하면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는 정희윤(45ㆍ여)씨는 지난 1년을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도 없었던 현실’이라고 소개했다.
건축기사였던 남편의 사고와 사업실패, 거듭된 도피생활과 남편의 가출, 딸 학비를 대기 위해 마련한 손수레까지 차압 당한 참담한 심정…. 정씨는 “‘이것봐, 아줌씨’라며 숱한 모멸감을 주는 독촉 전화와 딸아이 학교까지 찾아온 추심원들은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웠다”고 적었다.
추심원들은 친정 어머니가 충격으로 쓰러져 구급차가 올 때까지 전화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정씨는 “먹고 살기 위해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돌팔매질을 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수기를 올린 많은 사람들은 정씨처럼 추심원들의 독촉이 가장 무서웠다고 적고 있다.
채무조정을 받은 뒤 택시기사를 하면서 매달 25만원씩 카드 빚을 갚고 있는 김성주(47ㆍ남)씨는 “전화는 온 가족을 위협하는 무기였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우리 가족은 비명을 질렀고, 두 딸은 자지러졌다”고 소개했다.
남편의 빚 보증으로 한때 신용불량자가 됐던 김규옥(40)씨도 “이젠 전화기를 꺼놓지도 않고, 벨이 울려도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지 않게 됐다”며 사연을 적었다. 작년 8월부터 가족이나 동료에게 빚 독촉을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채무자와 연락이 끊겼을 때는 여전히 독촉이 가능하다. 본인 이외 빚 독촉 금지는 2007년께나 가능하다.
수기를 올린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족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희윤씨는 “딸이 없었다면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정씨의 딸은 정씨가 2~3년만 더 고생하면 자신이 돈 벌어서 다 갚겠다고 늘 위로해 왔다.
아내의 무리한 사업투자로 신용불량자가 된 육군 중령 출신의 이강(46)씨는 “만일 이혼을 했다면 나는 영원히 폐인이 됐을 것”이라며 “어떻게 해서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 신불자 안되려면 "금리 높은 빚부터 갚아야"
신용회복위원회는 수기집을 발간하면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지 않거나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빚 상환은 금리가 가장 높은 부채를 최우선적으로 갚는 것이 바람직하다.
같은 기간이라도 더 많은 이자가 쌓이는 대부업체나 상호저축은행 등의 부채를 은행 대출보다 먼저 갚아야 한다.
신용카드의 경우 수수료가 높은데다 사용일수에 따라 수수료가 부과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갚는 게 좋다. 신용카드 할부로 물건을 살 때는 2개월, 3~5개월, 6~9개월, 10~17개월 단위로 구입하는데 6개월보다는 5개월, 10개월보다는 9개월을 선택하는 것이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신복위는 또 사채를 이용할 때는 계약서를 반드시 받아두고 사채업자가 고의로 연락을 받지 않을 때는 관할 법원에 돈을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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