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경찰관을 천직으로 알고 항상 자랑스러워 했어요. 못다 간 그 길을 대신 가고 싶습니다.”
지난달 7일 음주운전 단속 중 무면허 음주운전 차량에 팔이 끼인 채 끌려가다 숨진 김태경 경사의 부인 이선희(33)씨가 남편의 뜻을 이어 경찰관이 되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몸서리칠 만도 하지만 이씨는 최근 남편이 근무하던 경기 수원 남부경찰서에 이 같은 뜻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결심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주저했다. 인사권자(경찰청장)의 재량으로 2002년, 2005년 순직 경찰관의 부인이 1명씩 채용된 경우가 있으나 이씨의 요청이 받아들여질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7일의 기억은 지우고 싶지만 이씨에게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남편이 오후 9시께 야간근무에 들어가면서 “오늘 딸(9)의 기말고사가 끝났으니 주말에는 다같이 놀이공원에 놀러 가자”고 전화 통화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2시간 뒤 갑작스런 전화 벨소리에 잠이 깼다.
“아파트 현관문 앞으로 어서 내려오라”는 동료 경찰관의 짧고 나직한 음성. 뜻밖의 전화에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고, 순찰차를 타고 찾아간 병원에서 그렇게 남편을 먼저 보냈다. 경찰에 입문한 지 9년. 고된 업무에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다정다감했던 아빠를 찾으며 딸과 아들(8)은 그날 밤새 잠을 못 이뤘다.
간호사인 이씨는 다니던 병원에 휴직계를 냈다. 장례를 치른 뒤 1개월여 동안은 무엇에 홀린 듯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루는 딸이 차창에 성에가 낀 것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빠가 우리 가족을 위해 눈꽃을 뿌려주셨다”고 말해 눈물이 쏟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지낼 수만은 없었다. 동료 경찰관들이 수시로 찾아와 위로해 준 것도 큰 힘이 됐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린 이씨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경찰청장 재량으로 유족을 경찰관으로 특채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의 뜻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었어요. 남부서 서장님으로부터 ‘추후 상부에 건의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한줄기 희망이 생겼습니다.”
결심은 했지만 걱정도 된다. 주위에서는 “경찰관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데 감당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다. 그래도 이씨는 남편이 천직으로 여겼던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이씨는 “가능하면 남편의 숨결이 남아있는 교통계에서 근무하고 싶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제 몫을 해 낼 자신이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포부를 밝혔다.
한편 경찰청 인사담당자는 “해마다 순직하는 경찰관이 수십 명에 이르기 때문에 유족에 대해 채용보다는 직접 보상을 위주로 한다”고 설명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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