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항상 그의 편이었고 의회는 그의 매력에 푹 빠졌으며 대통령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는 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았던 최초의 이코노미스트였다. 그가 말하면 시장은 들었다.
그 때 그를 가졌던 것은 미국의 행운이자 축복이었다.”“그의 재임 중 미국은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지만 그것은 빚 위에 쌓아 올린 모래성이었다. 그는 권력과 타협하며 ‘빚투성이의 나라’를 유산으로 남겼을 뿐이다. 미국 경제는 거품으로 가득찬 타이타닉호가 됐으며 후임자는‘독이 든 성배’를 물려 받은 꼴이다.”
▦1987년 8월11일~2006년 1월31일. 무려 18년 6개월간 미국, 아니 세계의‘경제대통령’으로 불리며‘금융시장의 마에스트로’역을 수행한 앨런 그린스펀(80)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13대 의장이 현지 시간으로 오늘 물러난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이후 4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5번이나 FRB 의장을 연임하는-9대 의장 윌리엄 마틴의 최장수 기록을 불과 4개월 차이로 깨지 못했지만-위업을 세운 그이기에, 언론과 학계의 관심의 고별 평전은 요란하다. 그러나 찬사 일색이었던 과거와 달리 평가는 한층 냉정해졌다.
▦87년 블랙 먼데이, 90년 걸프전 및 오일쇼크, 97년 국제외환위기, 2000년 IT거품 붕괴, 2001년 9ㆍ11테러 등의 고비 때마다 능수능란하게 금리를 요리한 그는 미국과 세계 경제의 구세주로 군림해왔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세계의 금리와 주가가 출렁이는 것을 지칭하는‘그린스펀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시장은 ‘비이성적 과열’을 우려한 그를‘이성적 과열’로 지지했다. 1일 취임하는 벤 버냉키 신임 의장이 인준 청문회에서 “그린스펀 의장의 18년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내내 강조한 것은 그의 권위를 보여주는 예화다.
▦그러나 지금은 비판의 시간이다. 이는 그가‘경제’라는 다이너마이트봉을 후임자에 건네는 그림을 표지로 게재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무리한 저금리 정책으로 성장을 지탱했지만, 그 결과 부동산 및 가계부채 거품, 천문학적 쌍둥이 적자 등 미국 역사상 최대의 불균형이 초래됐다는 뜻이다.
한때 그의 이름을 본딴‘Greenomics’가 나돌았던 것에 빗대 그를 ‘Greedomics(탐욕의 경제학)’의 교주로 비난하는 책도 나왔다. 은퇴 후 경영 컨설팅 회사를 차려 1회 강연에 15만달러의 돈세례를 받을 그의 크고 넓고 족적은 이제 양날의 칼로 변한 셈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