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의 지위는 각별하다.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유엔군사령관을 겸하는 그는 평시에는 3만여명의 주한미군만을 지휘한다. 그러나 전시에는 60여만명의 한국군 중 2군사령부 예하부대 및 수도방위사령부·특전사령부 등 일부를 제외한 한국군도 그의 작전 통제 하에 들어간다.
또 전쟁 발발 후 미국 본토 등으로부터 한국에 파견되는 40여만명과 항공기 1,600여대, 함정 200여척도 그의 지휘를 받는다. 국군통수권자인 우리 대통령은 형식상 한미군사위원회를 통해 주한미군사령관을 지휘하게 되어 있으나 전시상황에서 우리 대통령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 주한미군사령관은 막강한 권한 때문에 한국의 정치적 격변에 휘말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80년 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 투입에 대한 위컴 사령관의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신군부가 동원한 한국군부대는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 하에 있지 않았지만 위컴사령관이 사실상 신군부 병력이동을 승인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위컴 사령관은 “한국사람들은 레밍과 같이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는 들쥐 발언으로 한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 주한미군사령관의 주 임무는 북한의 군사행동 억제와 군사도발 격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반미의식이 높아지는 등 주둔환경이 달라지면서 주한미군의 이미지 관리와 한국민들과의 관계 유지가 주한미군사령관의 주요 임무로 떠올랐다.
특히 2002년 6월 효순·미순양 미군 장갑차 사망 사고 이후 주한미군사령관의 대 한국민 관계 유지 임무는 한층 더 중요해졌다. 최근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함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 주한미군의 역할이 크게 달라지고 있어 이 같은 임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내달 3일 한국땅을 떠난다. 그는 주한미군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사령관 임무를 수행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 중 가장 긴 임기인 3년8개월 동안 효순·미선양 사망 외에도 한미관계에 영향을 주는 숱한 일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역대 사령관 중 한국에 대한 이해심과 애정이 가장 많은 사령관으로 꼽힌다.
한국민과 주한미군의 유대관계 증진을 위한 ‘좋은 이웃프로그램’ 운영 등 한국민에게 다가오려고 한 그의 노력이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임과 함께 38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는 그가 귀국 후에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간직하면 좋겠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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