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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크기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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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크기의 정치

입력
2006.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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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ze Matters. 미국 유학시절 하루는 신문을 읽다가 ‘크기는 중요하다’는 뜻의 이 제목을 보고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자세히 읽어본 적이 있다. 읽어보자 남성비뇨성형외과의 선전광고여서 배를 잡고 웃었다. 연초부터 정치권이, 그리고 민족의 명절인 구정 친지들의 모임이 크기를 둘러싼 크기 논쟁과 ‘크기의 정치’로 뜨거워진 바 있다.

●큰 정부·작은 정부 이분법은 허구

논쟁은 노무현 대통령이 조세부담율 등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정부는 아직 작은 편이며 심각한 양극화의 해소를 위해 세금을 늘려 복지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나섬으로써 시작됐다.

이에 대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오히려 지나친 정부의 규제 등 큰 정부가 경제 침체와 양극화의 원인이라며 정부와 세금의 축소를 주장하고 나섰다. 또 노 대통령이 야당과 주류언론의 반발에 원래의 입장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자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은 부자들의 반발에 꼬리를 내린 비겁한 대통령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사립학교법 문제를 놓고 사생결단식으로 대립해온 여야가 연초부터 또 다시 정부의 크기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정말 오랜만에 정치권이 소모적이고 정략적인 세 대결이나 시대착오적인 색깔론 논쟁을 넘어서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건설적인 정책 논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리고 이와 관련, 두 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큰 정부, 작은 정부라는 총량적 크기의 허구성이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순히 살이 쪘다, 말랐다는 이분법을 넘어서 전체적으로 말랐지만 배만은 살이 찐 복부비만 등 부위별 크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의 크기도 마찬가지다. 작은 정부, 큰 정부라는 이분법은 많은 것을 왜곡하는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를 공격하며 복지 축소와 작은 정부를 주장한 신자유주의의 챔피언 레이건전 미국 대통령이나 대처 전 영국 수상, 또 이같은 전통을 이어받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방, 범죄와의 전쟁에 있어서는 예산의 확대와 큰 정부를 주장했다.

정부의 규제도 마찬가지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은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거의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고 하면서도 예를 들어 낙태 문제의 경우 오히려 정부의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최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작은 정부와 정부의 기능 축소는 신화에 불과하며 정확히 표현하자면 복지 기능의 축소와 자본축적 지원 기능의 강화라는 정부의 기능 조정이라고 불러야 한다. 즉 실제로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기능 축소가 아니라 기능 조정이다.

이 점에서 정동영 열린우리당 고문이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남북간의 평화체제를 전제로 국방예산을 줄여 복지예산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의하고 나선 것, 나아가 한나라당의 소금이라고 할 수 있는 원희룡 의원이 박 대표를 비판하며 “경제 부문에서는 작은 정부, 복지 면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커져야 한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은 크기 논쟁을 기능 조정 논쟁으로 발전시킨 반가운 일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총체적 크기 논쟁을 정부의 부위별 크기 논쟁 내지 기능별 크기 논쟁으로 발전시킨 진일보한 문제 제기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한 총체적 크기가 아니라 부위별 크기이다.

●경제·복지등 기능별 크기로 논해야

또 다른 문제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주장하는 것은 좌파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한나라당 논리의 허구성이다. 이 같은 논리가 맞는다면 역대 정부 중 가장 좌파적이고 잘못된 정부는 한나라당이 존경해 마지않는 박정희 정부라고 할 수 있다. 한국현대사에서 박정희 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정부가 경제를 규제한 정부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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