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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해님이 누고 간 똥' 꼬물꼬물…곰실곰실…알뜰한 사랑 살뜰한 정 담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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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해님이 누고 간 똥' 꼬물꼬물…곰실곰실…알뜰한 사랑 살뜰한 정 담뿍

입력
2006.01.2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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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이 누고 간 똥

정세기 동시집

창비 발행ㆍ8,000원

참 많이 아플 텐데, 힘들 텐데, 언제 이 시들을 썼을까. 정세기 시인의 동시집 ‘해님이 누고 간 똥’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심장병 때문에 학교를 쉬게 된 시인이 최근 뇌종양까지 겹쳐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면서 쓴 시들이다.

작고 여린 것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시가 많다. ‘아기 햇살’이 대표적이다. 전부 읽어보자. <손이 작아서 작은 것만 어루만져요, 개나리 가지에 꼬물꼬물 시골집 울타리에 살살 강아지 눈에 곰실곰실. 발이 디뎌요, 아가 신발에 사뿐사뿐 젖먹이 머리칼에 살짝 개미 허리에 조심조심. 귀가 낮은 소리만 들어요, 씨앗들 싹 트는 소리 땅속 깊이 아무도 못 듣는 봄이 오는 소리.>

시인은 주변의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살뜰한 정을 담아 돌아본다. ‘새벽 별이 첫 손님이고/저녁 달이 끝 손님’인, 담벼락 아래 채소 파는 할머니(‘할머니 가게’)나 단속반이 나오자 붕어빵 판 돈도 못 받고 도망가는 붕어빵 장수 아저씨(‘붕어빵 장수’)도 눈에 들어온다.

1989년 ‘민중시’로 등단해 그동안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사회의 아픔이나 그늘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파트 들어서기 전/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 하고(‘아파트 5’), ‘휴전선 저쪽에/쌀이 없어 굶는 아이들이 많다는데/눈이 쌀이라면/가난한 북쪽 마을에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눈이 쌀이라면’)고 바란다. 고된 노동에 지쳐 곯아떨어지는 엄마 이야기인 ‘ 코 고는 엄마’는 우습고도 슬프다. ‘드르륵 드르륵/미싱일 15년에/엄마 몸이 기계가 되었는지/재봉틀 소리를 내며 주무신다.’

시인은 한동안 말조차 하기 힘들 만큼 병세가 나빴는데, 다행히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얼른 나아서 이 시집의 시들처럼 튼실한 작품을 더 많이 내놨으면 좋겠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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