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6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달러 위폐 제조에 대한 미측 대응과 관련, “불법행위로 마련된 돈의 이전을 막는 것으로 경제제재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달러화를 보호하기 위한 순수한 법 집행이지 북한 제재는 아니라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은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 “타협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25일 서울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북한 정권을 압박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지 면밀하게 따져, (중략)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북한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려는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두 정상의 발언을 연결시키면 ‘제재가 아닌 법 집행에 대북 압박 의도가 있는 지 따져 봐야 한다’는 어색한 조합이 만들어진다.
이런 어색함은 두 정상이 모두 어떤 이유에서건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려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조치는 그것을 어떤 외교적 수사로 설명하든 그 실체가 제재이자 압박이다. 또 미국의 기세로 볼 때 이 압박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포괄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나아가 우리 정부가 압박이냐, 아니냐를 따져 그 결과로 미국의 태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계는 지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노 대통령의 말처럼 국정 최고책임자가 결정적 의견을 밝히기 보다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면 기민하고 실용적인 외교를 펼쳐야 할 우리의 정책 당국자들은 미국의 지속적인 대북 압박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고태성 워싱턴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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