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김에 가려 언뜻언뜻 비치는 아낙의 얼굴이 박처럼 훤하다. 하얀 가래떡을 뽑아내 떡판으로 옮기는 손놀림은 새처럼 날렵하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끊이지 않고, 간간이 까르륵 소녀 같은 웃음 소리도 터져 나온다. 한 쪽 조리대에서는 떡국용 떡썰기가 한창인데, 그 솜씨를 보아하니 한석봉 어머니가 울고 갈 만 하다.
공장 밖에서는 서울 등지로 설 떡국용 떡을 실어갈 트럭들이 시동을 건 채 기다리고 있다.
남들은 명절 불경기에 애가 타지만 충남 아산시 송악마을 사람들에게는 설이 설답다. 26일 오후에 찾아간 ‘느티나무떡’ 공장은 송악면 송악농협(조합장ㆍ이주선)이 직접 운영한다.
평소에도 바삐 돌아가지만 설 대목이 코 앞이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설 수요에 맞춘 생산량은 무려 쌀 132톤 분량. 돈으로는 5억2,800만원 어치나 된다.
설 전까지 배달하기 위해 이 달 초부터는 40명의 임시 직원까지 고용, 24시간 쉴 새 없이 공장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느티나무떡’ 공장은 1998년에 만들어 졌다. 이주선 조합장 등이 쌀 수입 개방 일정이 구체화하자 공장 설립을 서둘렀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매년 남아 돌아 애물단지처럼 쌓이고 있는 쌀을 시중보다 1가마 당 1만원씩 비싸게 구입, 떡을 만들었다. 쌀 개방 물결에 가슴앓이를 하고있던 농민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막상 떡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를 도시 소비자에게 파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 조합장은 아예 떡보따리를 짊어지고 전국을 뛰어 다녔다.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멀리 제주도까지 수 차례 다녀왔다. 농협이 직접 운영하는 점을 강조, 중간 판매상들의 믿음을 끌어냈다.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일단 판매처만 뚫으면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느티나무떡’은 단숨에 주부들을 사로 잡았다. 100% 국산쌀, 그것도 추청, 일미, 동진벼 등 일반미의 햅쌀만 사용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소비자들이 따뜻한 떡을 먹을 수 있도록 새벽 시간에 만들고, 생산 당일 오전 12시까지 팔지 못한 떡은 매장에서 모두 폐기 처분해 버릴 정도로 품질 관리도 철저히 했다.
중국산 쌀로 만든 떡이 값으로 승부하려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만큼 맛의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었다.
만드는 떡 종류도 다양해 명절에 많이 찾는 가래떡을 비롯, 찰시루떡과 두텁단자, 경단과 인절미, 바람떡 등 60여 종이나 된다.
’느티나무떡’은 지금 수도권에 8개의 상설매장을 갖고 있다. 서울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에 입점한 매장은 월 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어느 틈에 한 해 매출 규모가 45억원이나 됐다. 내년에는 쌀 가공식품의 다양화를 위해 대규모 쌀 제분공장도 세운다. 10여종의 쌀빵을 만들어 도시 소비자의 입맛을 파고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떡 공장에서 일하는 공혜진(여ㆍ36)씨는 “농민들에게 남아도는 쌀을 후한 값에 사주고, 또 그 쌀로 만든 떡을 팔아 높은 수익까지 얻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냐”며 “기분좋은 일을 하면 힘도 덜 든다”고 말했다.
송악농협 정성기 팀장은 “높은 품질과 다양한 상품으로 매년 10%이상 매출을 키워왔다”며 “내년에는 기존 농협판매망과 택배 영업 이외에도 대형 할인점 입점도 추진하고 있다” 고 자랑했다.
아산=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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