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국제마약밀수범 검거공로 김철수선장 우울한 설맞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국제마약밀수범 검거공로 김철수선장 우울한 설맞이

입력
2006.01.28 09:05
0 0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고독이 몸에 밴 지 오래지만, 이번 설에도 고향엘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참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든을 넘겼는데 언제 돌아가실 지도 모르잖아요. 추석 때는 꼭…”

뱃사람 김철수(49). 그에게 가끔 본명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지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는 적어도 당분간은 숨어 지내야 한다.

언제 이 지긋지긋한 도피가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죄를 지은 게 아니라 공을 세웠는데도 그렇다. 이런 말도 안되는 운명이 있나.

원양어선을 탔던 김씨는 지난해 9월 브라질 정부가 남미 콜롬비아, 수리남 등지에서 활동하는 국제 마약조직을 적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일이 있은 뒤 생활 터전이었던 수리남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던 김씨는 그 다음달 한국으로 돌아왔다.

연고도 돈도 없었던 김씨는 사회복지시설의 도움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목숨 걸고 마약 운송을 신고한 대가가 이것인가’ 싶어 한탄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평생을 배만 탔던 사람을 받아 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올해 초 다행히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화물운송회사의 도움으로 입출항 선박을 관리하는 일을 얻었다.

그러나 김씨는 국제 마약조직의 보복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선박공제나 상해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신분이 드러나면 위험천만이다.

일을 마치면 근처 여관이나 배 안에서 잠을 청할 뿐이다.

우리 정부는 김씨의 공을 인정했지만 보상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외국 수사기관이 처리한 사건이어서 보상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었다.

검찰은 그러나 최근 김씨 사건을 재검토, 관련법을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해석하기로 결정했다. 대검 김진모 마약과장은 “브라질에서 재판 기록을 넘겨 받는 대로 법무부에 지급 신청을 할 예정”이고 밝혔다.

말은 안해도 김씨는 우리 정부가 야속하다.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줄 법도 한데 나 몰라라 했으니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다행히 정부의 움직임이 다소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니 희망을 갖고 기다릴 뿐이다.

그래도 이번 설 연휴 동안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혼자 여관방에 틀어박혀 떡국이나 시켜먹으며 TV를 보는 일 뿐이다.

“ 김철수씨는 지난해 9월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아프리카 세네갈로 ‘물건’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물건이 화물이 아니라 마약임을 뒤늦게 알게 된 김씨는 고민 끝에 함께 승선한 마약 조직원을 제압한 뒤 한국대사관에 신고했고 한 달을 항해한 끝에 브라질 경찰과 인터폴에 마약을 무사히 넘겼다.

브라질 역사상 최대 마약 거래 중 하나였다.

(2005년 10월17일자 A8면 보도)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