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빠지는 게 좋겠습니까,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겠습니까?”
27일 서울 미아리의 한 철학관. 점술가 곁에 앉은 한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타 들어간다. “남편 몰래 했는데 이것 때문에 도통 잠을 못 자요.” 땅이 꺼질 듯 푸념이 이어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요지부동이던 점술가가 몇 차례 방울과 종을 흔들더니 컬컬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올해 만사가 형통하는 운이지만 그 중에서 금전운이 많이 따르니 그냥 가지고 있으면 그 주식은 오를 거야.”
중년여성은 “휴~” 한숨을 쉬더니 그제서야 가족들의 올 한해 운세를 묻는다.
신년을 맞아 점 집을 찾아 길흉화복을 점 치는 건 우리의 오랜 풍속이다. 올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미리 알고 싶은 것이 달라졌다.
가족의 건강과 재운을 묻는 질문은 그저 덤이다. 올해 점 집을 찾는 사람들은 점쟁이를 숫제 주식 컨설턴트로 착각하는 듯하다.
점 집에 틀어박혀 올해 설을 맞는 세태를 살짝 엿보았다.
“며칠 전에 아는 사람이 주식 얘기를 하더니만…거참, 얼마 전부턴 주식이 폭락하니까 다들 득달같이 달려와서 ‘빼요, 마요’를 묻네.” 앞을 못 보는 점술가 K씨의 말이다.
그는 주식 때문에 희비가 교차하고 있는 세태를 정확히 꿰고 있었다. 그는 “묻지마 투자를 해놓곤 그 뒤처리를 한해 운세로 풀어보려 하니 되겠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다른 점 집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몇 달 전부터 주식으로 특화한 질문을 꾸준히 받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다는 신촌 점성촌도 그랬다.
한 철학관 관장의 얘기다. “대학가라서 그런지 취업이 언제 되겠느냐는 질문은 연중 있었지만,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주식을 하는지 금전운을 물으면서 열에 두 세 명은 주식 얘기를 합디다.”
아무리 미래를 점친다지만 점술가 입장에서도 주식에 관한 물음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한 점술사는 주식 관련 질문은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고 답했다.
“금전 운을 묻는 거면 묻는 거지. 이 주식이 오를 건지 저 주식이 오를 건지를 묻다니. 참 한심해.” 그는 “두 사람이 손 잡고 들어 애정운을 보러 오던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 좋았다”고 씁쓸해 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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