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폐 문제를 놓고 우리 정부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막후에서 위폐 문제의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이 중국 한국을 매개로 간접 대화를 하고 있지만, 이견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위폐 문제는 그 자체로는 하나의 범죄의혹이지만, 이 사건이 북핵 6자회담의 전도와 직결돼있어 우리 정부로서는 조속히 해법을 마련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북한 위폐 문제에서 타협은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정부는 미국의 강경 입장에 적이 당혹해 하는 것 같다. 중국이 지난 주 미북 6자회담 수석대표간 접촉을 주선할 때만해도 상황 반전의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마카오 홍콩을 거쳐 한국을 방문한 미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이 대북 금융제재 동참을 요구하고 이어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노(NO) 타협’을 외쳐 그런 기대를 무색케 했다.
정부는 일단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고 중국도 유보적인 만큼 결론을 내릴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25일 회견에서 “결정적인 의견을 밝힐 때가 아니다”고 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실체적 진실이지만 위폐 제조의 성격상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북미가 한발씩 물러서는 절충점을 모색하는데 정부의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의 절충안은 북한이 국가나 김정일 위원장 차원이 아닌 실무라인에서 위폐를 제조한 것으로 인정하고 대신 유엔 마약협약, 테러자금조달억제협약, 반부패 협약 등 국제규범에 가입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주 베이징에서 열린 북ㆍ미ㆍ중 3자협의에서 중국도 비슷한 중재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에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18일 베이징 회동에서 돈세탁 관련 국제규범을 준수할 준비를 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중재안이 해법이 될 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국제협약 가입 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할 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국제협약에 가입할 경우 개별기업의 부정한 거래는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비밀자금 흐름까지 드러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대북 강경파는 6자회담과 별개로 범죄행위에 대해선 정치적 고려에 관계없이 금융제재 등 추가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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