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골리앗’을 덩치만 크고 아둔한 거인으로 언급할 때가 많지만 실상 그는 당시에 왕과 최고위층 장수만이 지니던 철제 무기와 갑옷, 방패잡이를 앞세운 키 2.8m의 블레셋 대표 장수였다. 따라서 성서적 의미를 떠난다면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에 대한 승패 원인 분석을 거인 골리앗의 무능에서 찾기보다는 자신의 장기인 돌팔매질을 잘 활용한 소년 다윗의 지혜와 용기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逆기술이전'의 역발상 필요
그런데 그 다윗과 골리앗이 힘을 합친다면 어떨까? 골리앗은 악(惡), 다윗은 선(善)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이 아닌 둘 다를 살리는 공생의 ‘역발상’으로 말이다. 이런 다윗과 골리앗의 공생을 연상케 하는 사례로, 혁신 능력을 갖추고 있는 벤처기업과 첨단 대형연구장비를 보유한 공공연구소 간에 이루어지는 ‘역기술이전’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선진국의 연구개발(R&D) 정책에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기술이전 형태는 연구소와 대학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한 후 기업에 이전시키고, 기업이 이를 제품화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개발한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상용화 기술을 민간이 이전받아 이를 상업화한 경우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거꾸로 기업이 개발한 원천기술을 국ㆍ공립의 대형연구소에 이전하는 ‘역기술이전’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스위스 로잔느 대학과 미국 조지아텍이 공동연구를 통해 밝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CERN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 대기업, 공기업, 대학의 스핀오프 등을 포함한 다양한 벤처회사를 지난 9년간 다각도로 추적 조사한 결과, 역기술이전이 기업과 연구센터 모두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준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 예로, 5년이 넘는 연구를 통해 핵심기술은 개발하였으나 상업화에 이르지 못해 이른바 ‘죽음의 계곡’에서 헤매던 한 벤처회사는 연구소와의 협력을 통해 전문가 자문 및 이론 검증 테스트, 실험 시설의 이용, R&D 아웃소싱과 추가적 재원 확보로 최초의 시제품 생산 계약을 무사히 성사시켰으며, 상업화에 결정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기업 자체의 R&D 자원이 충분치 않을 때 외부 대형연구소와의 협력에서 오는 이득이 더욱 큰 것으로 확인되어 우리나라의 많은 중소기업과 벤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또한 CERN은 이미 어느 정도 개발된 기술을 민간에서 이전받아 완성함으로써 비용 절감과 차후 신기술 개발의 프로세스를 가속화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상업화 측면에서는 기술을 이전받았던 기업과 연계, 단기에 신사업창출의 성과를 높일 수 있었다.
블루오션 개척 새견인차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포항 방사광가속기나 초고압 투과 전자현미경,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 등에 대해 역기술이전의 개념을 도입해봄 직하다. 비단 대형연구시설만이 아니다. 매년 출연 연구소들이 민간에 이전할 기술이전 목록을 작성하는 것처럼, 역으로 산업계에서 공공연구기관에 이전할 만한 원천기술을 발굴하여 새로운 형태의 산ㆍ연 협력 모델로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우리에게 부족한 기초기술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좋은 방법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공생이 엉뚱한 상상이 아닌, 기술 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에는 활로를 터주고 자칫 정체되기 쉬운 공공연구기관에도 활력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상생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치혁신의 ‘블루오션’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한 문제의식과 발상의 전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은 평범하지만 자명한 진리이다.
유희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