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철강 및 조선 업계는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철강 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위력을 발휘한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공급과잉으로 수급 여건이 악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다. 반면 조선업계는 최근 2,3년간 이어온 사상 최대의 호황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철강 수출을 전년에 비해 44%나 늘려 시장을 교란시킨 데 이어 올해에도 과잉 물량을 쏟아낼 게 분명해 보인다. 이에 따라 국내 철강 업계는 연초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한국철강협회도 올해 국내 조강 생산을 지난해 보다 1% 줄어든 4,722만 톤으로 예상하고 있다.
철강 업계는 중국산 철강재의 저가 대공세에 맞서 제품의 차별화 및 고급화에 주력하는 한편 원가 절감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의 철강 업체인 포스코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매출 21조원을 돌파한 포스코는 과감한 투자로 현재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는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택했다. 우선 매출 목표는 지난해보다 1조~2조원 낮춰 잡는 대신 앞으로 3년간 제품 원가를 1조원 이상 줄인다는 획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특히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고 글로벌 성장 및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올해 3조 9,000억원을 비롯, 2008년까지 3년간 모두 11조 7,0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국내 철강 부분 투자의 절반 이상을 제품 고도화 및 생산 능력 증강에 쏟아 부을 예정”이라며 “경쟁이 심한 일반 제품에서 고급강으로 전환, 자동차ㆍ전기 강판 등 전략 제품의 비중을 지난해 48%에서 2008년까지 8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기존의 고로보다 효율이 뛰어난 차세대 공정인 파이넥스를 상용화하고, 광양 2열연 공장합리화를 통해 2008년까지 국내에서 3,500만톤, 인도제철소 건설 등 해외에서 1,500만톤을 생산해 국내외 5,000만톤 생산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현대INI스틸과 동국제강, 동부제강 등도 제품 차별화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5조 2,000억원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잡은 INI스틸은 H형광과 무한궤도 등 세계 일류 상품을 앞세워 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 INI스틸 관계자는 “불황에 대비, 원가절감형 제품개발 및 판매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제강도 선박에 사용되는 고강도ㆍ고탄소 제품인 고급 후판(TMR)을 생산, 중국의 저가공세에 맞서기로 했다. 동부제강은 ▦10% 생산성 향상 ▦10% 원가 절감 ▦10% 이익률 달성 등 ‘트리플 10’을 통해 체질을 개선키로 했다.
반면 조선 업종의 기상도는 쾌청하다. 고유가 흐름이 오히려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석유시추설비ㆍ시추선 수주를 늘려주고 있는 추세다. 환율 하락도 헤지(위험회피)를 해오고 있어 별다른 걱정이 없다. 조선공업협회 관계자는 “조정 흐름을 타고 수주 물량은 지난해보다 다소 줄어들 수 있지만 금액으로는 사상 최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평균 3년반 치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만을 골라서 수주할 여유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를 77억 달러, 삼성중공업은 70억 달러로 잡았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도 “LNG선 등에서 수주 확대가 기대돼 지난해(68억 달러)보다 47% 늘어난 100억 달러 이상의 수주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 조선업 한국 싹쓸이 얼마나 지속될까
세계 조선업은 한국이 싹쓸이하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조선·해운시황 전문 분석 기관인 영국의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 조선업계가 수주한 선박은 전 세계 조선 수주량의 42%에 달한다.
라이벌인 일본 수주량의 2.3배에 달하는 수치다. 더욱이 세계 1위에서 5위까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한국 업체가 독식했다.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경쟁국보다 앞을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혜안’을 꼽는다. 국내 조선업계는 1990년대 초 앞 다퉈 설비증설에 나섰다. 당시 1위를 달리던 일본이나 유럽 조선업계는 선박 경기의 불황을 내다보고 설비확대를 주저했고, 오히려 “선가(선박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한국을 맹비난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90년대 후반 들어 호황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 아래 꾸준히 설비를 늘려왔다. 이 같은 예측은 적중, 일본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은 수주량 기준으로는 2000년, 건조량으로 2003년 일본을 완전히 따돌리고 1위로 올라선 뒤 지금까지 확고부동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세계제패는 얼마나 지속될까. 전문가들은 국내 조선산업의 체질개선에 주목하고 있다. 끊임없는 신공법 개발을 통해 기존의 벌크선 건조에서 탈피,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며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게 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국내 빅3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선박은 모두 176척에 달한다. 지난해 227척에 비해 51척이 감소했지만 수주액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30억 달러 가량 증가한 260억 달러다. 업계 관계자는 “LNG선과 특수선 등에서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 향후 10년간은 세계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 철강업계 CEO 새해 각오 "불굴 의지로 글로벌 경쟁"
국내 철강 업계는 2011년쯤 이면 포스코와 현대INI스틸의 양강 체제로 재편되는 등 또 한번의 격변에 휩싸일 전망이다.
INI스틸이 일관제철소(쉿물 단계에서 최종 제품생산까지 하나의 라인으로 구축된 제철소) 건립을 본격화하고 있어 5년 후면 포스코의 독점체제가 깨지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물량공세로 어수선한 새해를 맞은 철강업계 최고경영자(CEO)들로서는 미래 생존을 위한 큰 그림을 다시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포스코 이구택 회장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불황의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는 철강경기 탓도 있지만 “이 위기를 ‘글로벌 포스코’로 거듭나는 확실한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열정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현재의 불황은 세계 철강업의 경쟁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찾아온 구조적 변화”라며 “중국이 예상보다 빨리,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왔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상황인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회장은 또 인도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포스코는 2010년까지 37억 달러를 투입, 인도 오리사주에 400만톤의 열연코일 등을 생산하는 1단계 제철소를 준공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 창업 세대의 열정과 도전정신도 이어받자”고 힘주어 말한다.
현대INI스틸 양승석 사장의 올해 키워드는 현장 경영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집념이 담긴 INI스틸의 일관제철소 건립 작업을 직접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지수용 단계부터 실시설계 승인까지 올해 안에 마쳐 제철소의 세부 밑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양 사장은 아직 일부가 완성되지 않은 당진공장의 정상화에도 정열을 쏟고 있다.
양 사장은 “현장에서 직원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철강업계의 작은 거인인 동국제강 김영철 사장의 올해 화두는 기술경영이다. 한마디로 기술을 최우선시하는 50년 동국제강의 기술 제일주의 전통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김 사장은 “타사와 차별화한 전략 제품을 통해 독보적인 기술을 축적, 사업무대를 세계로 확장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기술백서를 만들고, 연구개발에 필요한 핵심인재를 적극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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