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6일 신년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철저히 각을 세웠다. 양극화 해법 및 경제정책, 대북ㆍ대미 관계 등 거의 모든 국정현안에서 전날 노 대통령의 회견내용과 입장을 달리했다.
양극화 해법 박 대표는 ‘감세정책’,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내세우며 노 대통령과 맞섰다.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원인과 대책은 전혀 달랐다. 박 대표는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은 현 정권이라고 직격했다.
30년만의 세계적 대호황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정권의 무능 때문에 경쟁국에 비해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해 장기 경기침체를 겪었고, 이것이 양극화 심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권이 성장동력 확충을 통한 경제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재정확대를 통해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은 또 다시 거꾸로 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큰 정부’는 민간 자율성 확대라는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실패한 사회주의 유물이라고 박 대표는 지적했다.
박 대표는 따라서 부처 예산을 삭감하고 불필요한 위원회를 없애는 등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한편 반기업ㆍ 반시장 정책을 없애야 400조원의 시중단기 자금이 산업에 투자되고,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진정한 양극화 해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사학법 재개정 문제 기존의 강경한 입장에 변화가 없었다. 회견을 앞두고 일부 측근이 국회 전격 등원 선언이나 영수회담 제의 등을 건의했으나, “사학법이 재개정돼야 한다”는 원칙에 막혔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는 회견에서 “장외투쟁이 지방선거까지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결연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언급에서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여야 원내대표의 30일 ‘산상회담’에 대해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했고, “여당이 재개정 논의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는 말도 했다.
장외 투쟁을 접지 않으면서도, 여당과의 대화에도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때문에 당내에는 “재개정 약속 없인 등원불가”라는 입장에서 “재개정 논의와 동시 등원”으로 한발 물러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내외 정치 현안 박 대표는 “북한 위조지폐 문제는 명백한 국제적 범죄행위로 6자 회담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규정, 위폐 의혹에 대해 신중론을 피력한 노 대통령과 대조를 이뤘다. 정부가 북한 눈치를 살피느라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박 대표는 또 한미일 공조를 토대로 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과도 거리를 두었다.
5월 지방선거와 관련, 그는 “지금 다른 당과의 합당과 연합공천 등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지만, “뜻을 같이 하는 분에게는 문이 열려있다”고 말해 향후 상황에 따라 연대를 고려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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