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7일)은 모차르트의 250번째 생일이다. 올해를 ‘모차르트의 해’로 선포한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전세계가 그를 기념한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와 그가 활동한 비엔나는 그 중심이다. 이후 사흘 간 이 두 도시에서 열리는 모차르트 생일 잔치를 시작으로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12월 5일까지, 매일 매일이 모차르트의 나날이다.
두 도시 모두 사상 최대 규모로 모차르트 기념 행사를 준비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여름 두 달 간의 잘츠부크르 음악제를 비롯, 22편에 달하는 그의 오페라를 전부 올리는 초유의 대형 프로젝트 등 260개의 콘서트와 55회의 모차르트 미사 등이 열린다. 비엔나의 ‘모차르트의 해’ 예산은 잘츠부르크의 4배가 넘는 3,000만 유로(약 360억원)다. 세계 최고의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비엔나로 몰려들고, 관광객은 오스트리아 전체 인구에 육박하는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에서는 지나친 물량주의와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지의 실제 표정은 예상과 달리 차분하다. ‘모차르트는 항상 우리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탄생 250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유난 떨 것 없다’는 것일까.
지난 주말 잘츠부르크 구시가의 게트라이데가세. 400m 쯤 되는 이 골목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이 있어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모차르트 생가에 들어서자 첫 번째 방에서 재미있는 미술품이 손님을 맞는다. 아기용 침대에 모차르트 인형이 눈을 뜬 채 누워 있고, 머리 위 허공에는 푸른 네온의 둥근 고리가 떠 있다. 흠, 우리 곁에 영원히 깨어있는 천사 모차르트!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열리고 있는 세계적 연극 연출가 겸 무대 미술가 로버트 윌슨의 설치미술전 중 일부다. 윌슨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다른 방은 모차르트 생전의 잘츠부르크 풍경으로 꾸몄다. 그런데 이걸 보려면 바닥에 드러누워야 한다. 천정에는 부조 작품이 아래를 보고 있고, 벽면에 부착된 옛 판화들은 모두 거꾸로 걸려있기 때문이다. 뒤집어진 공간에 어리둥절한 방문객에게 안내인이 설명한다. “보통 사람과 달랐던 모차르트의 독특한 사고 방식에 어울리지 않느냐”고.
구시가 맞은편 잘자흐 강변의 모차르테움. 음대와 공연장으로 유명한 이 유서 깊은 이 곳에서는 20일 시작된 ‘모차르트 주간’ 행사에 따라 매일 3차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실내악과 독주회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2월 5일까지 잡혀 있는오케스트라 연주회만도 21개나 된다. 공연을 알리는 현수막이나 포스터는 별로 안 보인다. 그러나 콘서트마다 객석엔 빈 자리가 없다.
이러한 차분함은 잘츠부르크 시내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관광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도 예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오스트리아 관광 기념품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모차르트 쿠겔(초콜릿)을 들고 서 있는 모차르트 입간판이나, 모차르트가 새겨진 티셔츠ㆍ수건ㆍ연필ㆍ엽서ㆍ향수 등은 늘 보던 것이다. 물론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의 대목 장사를 노린 상품으로 모차르트 소시지, 와인, 맥주, 심지어 벗을 때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흘러나오는 브래지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언론들이 빈정거리면서 전한 이런 상품들은 일부러 찾아 나서도 구경하기 어렵다.
비엔나의 표정도 비슷하다. 비엔나 국립오페라, 스테판 성당, 알베르티나 박물관 등 명소가 모여 있는 도심 곳곳에 모차르트의 해를 알리는 원통형 광고판과 작은 깃발이 보일 뿐, 흥청대는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국립오페라 앞 도로 한복판의 광고판. 파란 하늘에 흰 구름으로 둥실 뜬 모차르트 초상이 오가는 차량 행렬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거리의 공연 포스터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맘마미아’와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 더 많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렸던 스테판 성당은 올해 비엔나가 준비한 모차르트 종교음악 전곡 연주의 중심지다. 모차르트 생일인 27일, 여기서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가 울려퍼진다. 이를 세계 25개국에 중계할 오스트리아 국영 방송(ORF)은 올해 모차르트 작품을 모두 방송할 계획이다.
같은 날, 비엔나의 모차르트 관련 새 시설로 ‘비엔나 모차르트 하우스’와 ‘테아터 안 데어 빈’이 문을 연다. ‘비엔나 모차르트 하우스’는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한 집을 멀티미디어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대본 작가 쉬카네더가 세운 유서 깊은 극장으로, 수십 년 간 뮤지컬 등에 쓰이다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모차르트 오페라 하우스로 탈바꿈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의 올해 모차르트 공연은 90개가 넘으며, 내년부터는 현대 음악 콘서트도 속속 열린다.
잘츠부르크와 비엔나는 모차르트의 도시이다. 모차르트 경제 효과의 성과물이 오스트리아 최고의 재산이긴 하다. 하지만 그네들은 굳이 이를 요란스럽게 주장하고 이용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250번째 생일을 앞둔 현지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그저 숨쉬듯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로, 그리고 진지하게 모차르트를 만나고 널리 알리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잘츠부르크ㆍ비엔나=글ㆍ사진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천재 아닌 인간 조명"
비엔나 도심 말러 거리의 ‘비엔나 모차르트 2005’ 조직위원회 사무실. 모차르트의 250번 째 생일을 나흘 앞둔 23일, 큰 잔치를 코앞에 둔 집의 부산함이 없어 의아했다.
올해 비엔나의 모차르트 관련 행사를 총지휘하는 예술 감독 피터 마르보(62)씨를 만나 의문을 풀었다. 그는 1991년 모차르트 사망 200주년, 1994년 슈베르트의 해, 1997년 요한 슈트라우스의 해도 주관한 베테랑이다.
-들뜬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비엔나도 잘츠부르크도 조용하다. 왜 그런가?
“모차르트 오페라 ‘후궁 탈출’을 본 요세프 황제가 “음표가 너무 많다” 하자 모차르트가 “꼭 필요한 것만 썼다”고 했다. 우리도 그렇다. 사람들이 모차르트에 질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너무 소란을 피우면 오히려 무감각해지고 식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다.”
모차르트의 해가 너무 상업적으로 흐르고 물량주의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는데.
“전체 프로그램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것이다. 철저히 음악과 예술, 문화 중심으로 준비했다. ‘비엔나 모차르트 2006’은 거창한 이벤트나 관광 홍보, 노스탤지어를 위한 게 아니다.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일일이 막을 수는 없지만.”
‘비엔나 모차르트 2006’의 기본 방향은 무엇인가.
“음악을 우리 삶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로 만들고, 모차르트의 창조적 정신을 사회와 문화예술 전반에 퍼뜨리는 것이다. 그를 통해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예술가들에게 음악, 연극, 영화 등 40개 작품을 위촉했다. 그 중에는 베른하르트 랑의 오페라 ‘나는 모차르트가 싫어’도 있다. ‘천재’ 모차르트가 아닌 ‘인간’ 모차르트를 조명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지금 우리에게 모차르트가 왜 중요한가.
“철학자 니체는 “음악이 없는 삶은 오류”라고 했다. 그런 오류를 피할 최상의 방법이 모차르트다. 모차르트를 많이 들을수록 행복해진다. 예술은 관용을 가르친다. 그리고 차별과 편견을 버리게 한다. 그는 시대를 앞서 간 진보주의자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으며, 생애의 3분의 1이 넘게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여러 문화를 흡수한 코스모폴리탄이었다. 현대인과 많이 닮았다. 우리는 그에게서 배울 게 많다.”
글ㆍ사진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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