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의 해난구조대(SSU, Ship Salvage Unit)는 바다의 119로 불린다. 생명줄 하나에 의지해 바닷속 100㎙까지 내려가 침몰한 배나 잠수함를 인양하고 인명을 구한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인 심해(深海)도 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23일 해난구조대가 훈련하고 있는 경남 진해시 해군 작전사령부를 찾았다. 국내 언론 최초로 지난해 해군이 도입한 심해잠수 훈련장비에 동승, 수심 20㎙를 체험했다.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심해잠수 훈련장비(DDS, Deep Diving Simulation)의 출입구가 닫혔다. 3평 남짓한 챔버에 권기용(33)중사, 정영재(30)중사와 함께 남겨졌다.(두 사람은 남았겠지만, 기자는 남겨졌다는 느낌이 확 몰려 들었다.) 잠시 후 ‘하잠(下潛)’하는 통제실의 지령이 떨어졌고, ‘쏴’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왔다. 잔뜩 긴장된 몸에 한기가 몰아 닥쳤다. 챔버 내 기압은 점차 높아지고 수심계는 서서히 내려갔다.
이 날의 미션은 20㎙까지 잠수. 압력이 올라가자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고 귀가 막히는 느낌이 왔다. 사전에 교육받은 대로 손으로 코를 쥐고 바람을 힘껏 불어 귀를 뚫는 동작(펌핑)을 반복했다. 헌데 SSU 두 대원은 펌핑도 하지 않고 통제실과 태연히 교신을 하는 게 아닌가. “괜찮으세요”라고 말을 꺼냈는데 목소리는 몸 안에서만 울리는 듯했고, 바깥으로 튀어나온 소리는 오리가 ‘꽥꽥’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헬륨가스를 마신 뒤 말을 할 때 나타나는 ‘도널드 덕’ 현상이라고 했다. “이 정도는 끄덕 없습니다”라며 권 중사가 내뱉는 말도 똑같았다.
챔버로 공급되는 혼합기체는 일반공기와 달리 헬륨과 산소를 섞어 만든다. 심해에서 일반공기로 호흡할 경우 질소가 체내에 축적돼 질소중독(잠수병)에 걸리기 때문이다. 수심 100㎙이상의 심해잠수에는 그래서 헬륨 혼합기체를 사용하고 혼합기체를 체내에 흡수시킨다는 의미에서 포화잠수(飽和潛水, Saturation Diving)라고 한다.
20㎙는 순식간에 내려갔다. 2~3분 만에 수심계가 20㎙를 가리키고 있었다. 펌핑에도 불구하고 귀가 막힌 상태가 계속되면서 머리는 멍해졌다. 이제 SSU대원들에게 말을 꺼낼 의욕조차 싹 사라졌다. 기압이 올라가는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라며 챔버에 들여보낸 농구공과 배구공은 완전히 찌그러졌다. 10㎙ 내려갈 때마다 1기압 정도가 상승하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상태는 지상보다 압력이 3배나 높은 상태. ‘공이 찌그러질 정도면 내 몸은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면서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높은 기압 때문에 수심 100㎙ 이상은 훈련에서나 실전에서나 참기 어려운 ‘고통의 바다’다. 정 중사는 “관절이 접힐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고 했다. “챔버 내에서 훈련할 때는 식욕도 없지만 밥을 씹으면 마치 고무를 씹는 것 같다”고 권 중사도 거들었다.
이제 다시 부상(浮上)이다. 올라갈 때는 하잠 때보다 수심계가 5배 가량 천천히 움직였다. 급격히 올라 갈 경우 혼합기체가 자연스럽게 배출되지 않고 기포화하면서 폐나 혈관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서서히 압력을 낮춰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하잠 때와 마찬가지로 쏴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빠진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막혔던 귀가 ‘뻥뻥’하면서 뚫리기 시작했다. 기분은 상쾌했지만 갑자기 한기가 엄습했다. 온도계는 바깥보다 10여도 낮은 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심계가 0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자 찌그러졌던 공도 점차 원래의 둥근 모습을 찾아갔다. .
100㎙이상의 심해잠수 훈련에서는 1㎙를 내려가는데 1분이 걸리고 감압과 함께 올라올 때는 1㎙당 대략 50분이 걸린다. 훈련을 한번 마치고 나오면 체중이 4, 5㎏씩 빠지고 2, 3개월은 쉬어야 할 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고 한다.
훈련장비에서는 온도 조절도 되고 조명도 환하지만 실제 작전에서는 칠흑 같은 어둠과 살을 에는 추위로 더욱 고통스럽다. 공용동 중령은 “포화잠수 자격증을 가진 SSU대원들도 1년에 한번 이상은 훈련이나 실전에 투입하지 않는다”며 “그나마 마흔 살을 넘으면 모든 훈련과 작전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 작년 가·감압 DDS 도입…수심 300m 성공
▦ 해군에서는 특수전부대로 수중폭파부대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가 유명하다. 하지만 UDT는 실제 전투상황이 아니면 투입될 일이 없다. 반면 해난구조대(SSU)는 전ㆍ평시 전천후로 임무가 주어진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사건, 94년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 99년 거제도 남쪽 북한 반잠수정 격침 사건 등 해난사고가 날 때마다 선체와 사체 인양작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수심 100㎙이상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 속에 혼합기체를 흡수시키는 포화잠수훈련을 받아야 한다. 해군은 그 동안 훈련장비가 없어 잠수사를 양성하기 위해 영국 등으로 전지훈련을 떠나야 했다.
해군은 지난해 250억원을 들여 육상훈련 장비인 DDS를 도입했다. SSU대원 6명은 지난?말 이 장비로 300㎙수심까지 내려가는 포화잠수훈련에 성공했다.
▦ DDS는 가압과 감압을 할 수 있는 지름 3㎙ 길이 10㎙크기의 거주용 챔버 2개와 잠수병 치료에 활용하는 치료용 챔버, 물을 채워 수중환경을 재현한 챔버 등 4개의 대형 원통으로 구성돼 있다.
수중 300㎙ 환경을 훈련할 경우 거주용 챔버에서 2일간 가압한 뒤 수중 챔버로 이동해 4~5시간의 구조훈련을 하고 거주용 챔버로 복귀해 12일에 걸쳐 감압에 들어간다. 거주용 챔버에는 침대와 화장실이 비치돼 있고 외부와 음식 오물 빨래를 주고받는 통로가 있다.
진해=김정곤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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