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대사관이 24일 ‘대북 금융제재를 한국에 요구했다’는 내용의 의도적인 보도자료를 내놓고 우리 외교부가 25일 “그런 요구를 들은 바 없다”고 반박, 한미간 갈등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면서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정말 대북 제재를 요구했는지, 한미간 갈등은 심각한 것인지, 미국과 중국의 마카오 협의는 어떻게 된 것인지, 6자회담은 어찌 되는지…곳곳에서 의문부호가 떠다니고 있다.
① 미국, 대북 제재 정말 요구했나: 美, 외교부 아닌 재경부에 요구
주한 미 대사관의 ‘요구했다’는 보도자료도 맞고, 우리 외교부의 ‘그런 제의를 받은 바가 없다’는 반박도 맞다. 그 이유는 미 금융범죄단속반이 23일 오전에 외교부와의 협의에서는 북한 위폐에 대한 일반론적인 얘기만 했고 오후 재경부를 방문, 김성진 국제업무정책관을 만났을 때 대북 제재 동참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이미 외교부에도 통보된 사항으로 판단했고, 또 대언론 브리핑은 외교부가 주도하기 때문에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외교부는 미측과 “언론 발표 수준은 논의된 내용보다 낮게 한다”고 합의했으나 재경부는 그런 합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② 주한 미 대사관, 왜 뒤늦게 공개했나: 美, 한국측 조심스런 태도에 불만
미 금융범죄단속반은 우리 외교부의 23일 브리핑에서 자신들이 중점을 두고 있는 대북 제재 동참요구가 전혀 들어있지 않자 별도 발표를 한 것으로 보인다.
미측이 재경부 관계자에게 그런 요구를 했고 재경부가 보도자제 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핵심 내용을 공개했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는 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미 정부가 우리 외교부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불만을 갖고 논란을 감수하면서 대북 제재 요구를 공개했다고 볼 수 있다.
외교부는 “미 재무부 팀이 국무부처럼 정치적 파장을 정교하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한 미 대사관은 미 재무부 소속이 아니고 국무부 소속이다. 따라서 미 대사관의 예민한 보도자료는 미 정부의 의중이 실렸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보도자료만 보면 미 금융범죄단속반이 홍콩 마카오를 방문했을 때 발표한 내용과 비슷하다. 당시 미국은 “우리 조치와 ‘비슷한 방어적 조치’(similar defensive measures)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called on)”고 했다.
주한 미 대사관 자료에도 “비슷한 조치(similar steps)를 요구한다(urge)”고 돼있다. 그러나 의도적 공개도 그렇고 ‘called on’보다 강한 뉘앙스의 ‘urge’라는 단어를 쓴 것도 주목된다.
외교부는 “미측이 우리에게 ‘urge’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③ 미국과 중국, 마카오 협의에서 어떤 논의했나: 中 "北개입 증거 불충분"… 美와 이견
북한 위폐 문제의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은 지난주 마카오 협의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의 전언으로는 중국이 미국이 제시한 증거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중국도 북한이 위폐 문제에 어느 정도 개입한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준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미 금융범죄단속반도 마카오에서 중국의 위폐 조사 결과를 들었고 기초자료를 수집해 갔다”며 “미국은 미국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서로 제공받은 정보를 분석해 결론을 내릴 것이며 그 기간은 다소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④ 우리는 대북 금융제재에 동참하나: 美도 조사단계… 美·中 결론 본 후에
이 대목에서 포인트는 중국이 정치적 고려에 의해 미국의 증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느냐 여부다. 정부 설명으로는 중국이 이미 세계 금융체제에 편입된 상황에서 명확한 증거를 거부하는 것은 작게는 마카오 금융체제의 붕괴를, 크게는 중국 경제 전체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사국이 아닌 우리가 지금 개입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미국도 금융범죄단속반을 마카오와 홍콩, 한국 등에 보내 기초자료를 조사하는 단계다.
미국과 중국이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두 나라가 어떤 결론을 내리고 합의를 하느냐에 따라 대처하면 된다.
⑤ 북핵 6자회담 재개는 어떻게 되나: 비관 전망 속 美 "새로운 제안 준비중"
북한 위폐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강경해진 것으로 드러나 6자회담 재개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도 “외형적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졌다”고 인정한다.
실질적으로 북한 위폐 문제와 6자회담이 연동된 상황에서 미북간 대립에 이어 한미간 갈등까지 생기면 6자회담 재개는 난망해진다. 그러나 갈등의 극대화는 뭔가 매듭을 짓기 직전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는 기대도 우리 정부에 있다.
방한 중인 잭 크라우치 미 국가안보 부보좌관이“새로운 제안(fresh ideas)을 갖고 6자회담을 준비중”이라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음미해볼 만 하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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