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승부를 택했던 최광식 경찰청 차장이 25일 이틀 만에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퇴는 없다. 한 점 부끄럼 없다. 나를 조사하라”던 자신감도 한풀 꺾였다. 도대체 이틀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먼저 청와대나 정치권의 압박설을 떠올릴 수 있다. 청와대는 최 차장의 23일 ‘경찰 명예회복선언’이후 최 차장의 혐의 내용과 관련해 상세한 정보를 수집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최 차장 본인의 결백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미 윤상림 사건과 관련해 돈 거래 의혹에 휩싸인 만큼 지휘 능력을 상실했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경찰총수가 검찰에 소환되는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피할 방법을 고려했을 법도 하다.
명예퇴직 신청 직후 최 차장의 소극적인 반응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최 차장은 이날 밤 사무실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침묵했다. 이틀 전 계좌 입출금 목록까지 내보이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알리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는 지난해 말 시위농민 사망 사건의 책임을 지고 전격 자진 사퇴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 닮은 꼴이다. 허 전 청장도 당시 이틀 동안 버티다가 결국 정치권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옷을 벗었다.
한편으론 경찰 조직 보호와 자신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고육지책으로도 풀이된다. 경찰청 고위 간부는 “이틀 동안 무척 고민한 것으로 안다. 최 차장은 ‘내가 떳떳하다고 하면 검ㆍ경 갈등으로 비쳐지고 가만히 있자니 개인적으로 억울하고 조직의 명예도 떨어질 것 같아 괴롭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전언이 사실이라면 직위를 벗어버리고 개인 신분으로 당당하게 검찰 소환에 맞서 경찰 조직도 보호하고, 자신의 명예도 더럽히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 등에서 경질 또는 사퇴 유도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명예퇴직 신청이라는 반발의 뜻이 담긴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쨌든 최 차장의 명예퇴직 신청으로 이택순 경찰청장 내정자가 경찰청장 직무대행에 임명돼 검ㆍ경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과묵하고 깔끔한 합리주의자로 알려진 이택순호(號)가 조기 출범함에 따라 검ㆍ경 갈등도 한풀 누그러질 전망이다. 이 내정자는 무엇보다 조직의 안정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일선에서도 “명예로운 결정을 한 것 같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고, 검찰에서도 “현직 경찰청장 소환이라는 부담을 덜게 됐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수사권조정 문제 등을 둘러싼 검ㆍ경의 대결 양상이 1년 이상 이어진 터라 최 차장의 결정이 경찰 내부 단결로 이어지는 등 오히려 검ㆍ경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여전하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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