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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밥보다 철학, 돈보다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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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밥보다 철학, 돈보다 예술

입력
2006.01.2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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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관 세미나실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망수업’이라는 제목 아래 성프란시스대학 학생 17명이 미국 작가 얼 쇼리스(69)씨와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공부하는 공개수업이 열렸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소장 임영일 신부)가 지난해 9월 서울에 개설한 교양강좌이다.

쇼리스씨는 이 학교의 전범이 된, 빈민 대상 인문학 강좌인 클레멘트 코스를 1996년 미국에 처음 연 사람이다. 당시 그는 왜 가난이 생기나를 밝혀내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800개 가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성죄수로부터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문학이나 철학이나 예술 같은 것이 없어서’라는 말을 듣고 빈민을 위한 인문학 과정을 개설했다.

●노숙인을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가난은 밥이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신이 빈곤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 생각은 사실로 드러나 클레멘트 코스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구하거나 대학에 진학했으며 일부는 치과의사와 박사, 전문상담가가가 되었다. 클레멘트 코스는 멕시코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 등 5개국 53개 도시로 번져나갔다.

한국인의 평균학력이 12년인데 반해 노숙인들의 평균학력은 8년. 대부분 그리스철학과는 인연이 멀다. 쇼리스씨는 그런데도 굳이 플라톤을 고른 이유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업에서 일부 노숙인들은 교재를 읽지 않고 온 것을 감추기 위해 불교우화나 동양철학을 꺼내기도 했고 ‘변론’이 아니라 ‘변명’으로 표기된 국내판 번역 때문에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쇼리스씨는 모두를 격려하면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어떻게 살라고 했는가’ ‘살아가는데 덕이 꼭 필요한가’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같은 짧은 질문을 계속했다.

마침내 노숙인들 사이에서는 “소크라테스를 진작에 몰라서 이렇게 됐다. 나는 소크라테스를 다시 죽여야겠다”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경제학자이다” “서양철학이 아니라 동양철학이 우리에겐 맞다” 같은 각양각색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래도 교재가 말하려는 주제와는 멀어보였다.

그러나 쇼리스씨는 수업후 “노숙인들이 자기만의 생각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일깨우고 싶던 것”이라며 “학생들은 아주 잘하고 있다”고 감격했다.

수업후 교재를 읽고 오지 않은 노숙인을 만났다. 1958년생인 그는 13살부터 노숙을 했다.공부는 중학교 전수과정을 빼먹다시피 다닌 게 전부였다. 성프란시스 대학에 입학하고 한달쯤 되어서는 “괜히 이상만 높아져서 노숙인 생활이 더욱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나자 마음 속에 “떳떳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더라고 했다. 그는 지금 택시를 몬다. 오전 11시에 일이 끝나 두 시간쯤 눈을 붙이고 샤워를 하고 수업시간에 대느라 책은 못 읽었다.

“(서울에서는 아무 일도 안 해도) 찾아다니면 하루 8끼도 먹는다”고 노숙인 실태를 소개한 그는 성프란시스 강좌를 들은 노숙인들은 공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일을 해서 밥을 사먹는다. “경제적으로는 더 쪼들리지요. 그래도 이게 편해요.” 그는 더 노력해서 다시서기지원센터의 공동생활도 벗어나겠다고 했다.

봄부터 성프란시스 대학을 다닐 예정인 신(41)씨는 왜 이런 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에 “문학이나 철학이나 예술 같은 걸 배우고 싶었어요. 제가 예술을 좋아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순간이지만 노숙인 특유의 기죽은 표정이 사라지면서 얼굴이 감미로움으로 가득 찼다.

●삶의 희망 주는 인문학 교육

사회적 일자리나 빈민을 위한 소액대출 등의 제도로 가난한 이들이 일어설 수 있는 장치는 제법 되어있다. 문제는 이들 스스로 일어설 의지가 없거나 의지는 있어도 일터에서의 지시를 이해할 능력 자체가 떨어져 일을 시킬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문교육은 이런 이들에게 문해(文解) 능력과 스스로 일어설 마음가짐을 동시에 주는 듯했다.

또하나, 늘 멸시만 받던 이들은 미국에서는 ‘미스터’ 한국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존경스런 호칭으로 불리는데 이것이 이들 스스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 빈민을 위한 인문학 교육이 확산되는 것과 아울러 초중고등학교의 교직자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도 되돌아보았으면 싶었다.

대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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