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사는 정모(26)씨. 이메일 주소는 갖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신 메일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문자 메시지 정도는 휴대폰으로 보내지만, 기본적으로 ‘휴대폰은 전화만 잘되면 O.K’라고 생각한다. 잘 봐주면 ‘반(半) 디지털인(人)’이요, 조금 야박하게 매기면 ‘아날로그인’이다.
이런 정씨가 최근 디지털화(化)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고교 졸업 후 7년이 다 됐지만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했던 그는 지난해 여름 공무원 시험에 도전키로 결심했다. 아르바이트일이 끝나면 도서관에 직행, 시험 준비를 해 왔던 정씨는 보름 여 전 가슴을 쳤다.
지난해의 경우 1월 중순에 9급 공채 시험 공고가 있었던 것만 생각하고 있다가 “1월 초에 접수가 마감됐다” 는 소식을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것. 컴퓨터와 친하게 지내지 못한 까닭에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온 접수 공고를 놓쳐 빚어진 웃지 못할 소극(笑劇)이다.
서울 강남구는 지난해부터 속칭 ‘대치동 학원가’ 최고의 수능 강사진이 주도하는 인터넷 수능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타 지역 주민들은 또 다른 ‘디지털 갭’ (Digital gap)을 실감할 수 밖에 없다.
고2 수험생을 둔 김모(45)씨는 “아이 교육을 위해 대전(대치동 전세)에 가지는 못할 망정 수준 높은 인터넷 수업 조차 아이에게 받게 해 줄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 고 말했다.
디지털 갭, 즉 정보화 격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유비쿼터스, 블루투스 등 각종 정보통신 용어와 도구들에 대한 접근성, 이용 정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정보화 진행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정보화 격차도 커지는 건 당연한 일.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정보화 격차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2005년 상반기 정보화실태조사’ 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 중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20.1%로 나타났다. 6세 이상의 77.7%에 비하면 노년층의 정보화 소외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같은 조사에서 나타난 노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더욱 낮다. 60세 이상 인구 중 인터넷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경우는 14.4%에 그쳤다. 여성 장애인도 디지털 갭의 가장 혹독한 피해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위급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을 갖고 있는 여성장애인이 14.3%에 불과했다.
정부도 정보화 격차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2010년까지 1조9,000억원을 투입해 현재 일반 국민 대비 54%에 불과한 소외 계층의 정보화 수준을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는 “하드웨어를 많이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외 계층이 인터넷 등을 통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