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가 좋아졌다는 게요.” 설을 맞아 재래시장도 오랜만에 ‘명절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때문인지 기자가 취재차 만난 재래시장 상인들은 대뜸 언성부터 높였다.
이런 장밋빛 보도가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해 부아가 난 모양이다. 반면 백화점에는 고가의 선물세트를 구입하려는 고소득층으로 붐볐다. 소비심리가 회복될수록 백화점과 재래시장 사이의 양극화 현상의 골이 더 깊어 지고 있는 것이다.
24일 저녁 서울 남대문시장. 특산품을 선물하려는 일본인 관광객들만 간간히 눈에 띌 뿐 좀처럼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도깨비상가 등 남대문시장의 대표적인 상가들은 일찌감치 철시해 황량한 분위기다.
35년째 채소를 팔고 있다는 임금남(70)씨는 “명절 무렵이면 배추, 마늘, 시금치를 하루 15관(貫)씩은 팔았는데 오늘은 콩나물 두 단만 팔았을 뿐 손님 구경도 못했다”며 “권리금만 2,000만원이 넘는 목 좋은 이 자리에서도 장사가 이 정도인데 다른 가게 사정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소매상인들에게 선물용 포장지, 리본, 쇼핑백 등을 파는 대형 포장업소의 점원 서모(28)씨는 “이맘 때면 포장지를 2,000~3,000장씩 주문하는 ‘큰손’들이 하루 4,5명은 있었는데, 요즘은 100~200장 주문하는 손님들만 드문드문 찾아올 정도”라고 전했다.
자녀들에게 명절용 새 옷과 신발을 사 입히려는 부모들로 분주할 법한 아동의류 아울렛도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아동용 수제화를 파는 양모(37)씨는 “4~5년 전만해도 명절 대목이면 하루 50켤레는 팔았는데 요즘은 20켤레 팔기도 힘들다” 며 “누가 소비심리 회복을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형할인점들도 예상만큼 매상이 오르지 않아 울상이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햄포장선물세트를 판매하는 김모(25)씨는 “지난 추석에 비하면 4분의1 수준, 지난해 설보다도 60% 정도 밖에 안 팔린다” 며 “보통 명절 4,5일 전이면 ‘대박’ 이 터졌으나 올해는 명절이 코 앞에 다가와도 대박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이 할인점의 설 선물 판매율은 5% 가량 떨어졌다.
반면 지난해 12월 3년 만에 두 자리 수 성장을 기록했던 백화점 업계는 오랜만의 ‘설 특수’로 신바람이 났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 관계자는 “지난해 설과 추석 하루 20개 남짓 팔리던 12만~30만원대의 과일포장세트가 이번 주에는 40개 이상 나가고 있다”며 “연말특수와, 1월 정기세일의 호황 분위기가 설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대표적인 고가품 매장인 갤러리아 명품관의 경우 지난달 매출이 32%, 이달에도 16% 신장하는 등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도 설선물 판매율이 23.8%나 높아졌다.
신세계백화점 김봉수(44) 마케팅 팀장은 “지난해 주식, 부동산 값의 상승으로 재산이 늘어난 중산층 이상의 소비심리가 설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달 들어 대형 PDP, 수입가구 의 매출이 30% 이상 오르는 등 백화점들의 매출 회복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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