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만 한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무렵이면 멀리 떨어진 일가친척이 생각나고, 오래도록 가보지 못한 고향이 생각난다. 특히 외로울 때에는 더욱 간절하고, 밤새울 고뇌라도 있으면 더욱 보금자리를 틀었던 고향이 간절하게 다가온다. 삭막한 경쟁뿐인 도시사회에서 ‘고향’이 훈훈한 향내로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여기에 있다.
설날의 이런저런 일들은 아무래도 가슴 벅차게 마련이다. 부모님이 먼 장길을 걸어 마련하신 설빔도 그렇고, 넉넉하게 쥐어주신 세뱃값도 결코 잊지 못한다. 또래끼리 한 바퀴를 돌며 동네세배를 다녔던 어린 시절, 배고프지 않아도 집집마다 내놓았던 떡국이 그 얼마나 꿀맛 나던가.
큰집 앞마당에는 놓인 널을 뛰던 누이들, 양지 바른 고샅에서 종지 윷을 즐기던 동네 사람들, 천변이나 강나루 모래사장에서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하늘 높이 날리다가 액운을 쫓아내야 한다며 멀리멀리 연을 날려보내던 대보름날 밤. 이 모두가 사람살이의 향내가 한껏 나는 고향의 추억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경제발전과 고도성장의 프로그램 속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다. 땀방울을 닦을 새도 없이, 그리고 이웃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저 성공과 발전의 신화창조만을 위해 내남없이 애썼다.
그 결과 명절마다 이어졌던 아름다운 민속들은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뿐이 아니다. 앞만 보고 살았기에 정도보다는 사도(邪道)에 익숙했고, 성공 지상주의로 치달았기에 과정의 아름다움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삶은 제로섬 게임에 빠졌고, 개인적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의 흙탕물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동안 미덕으로 자랑스러워했던 숭조보근(崇祖報根)은 물론이고 공동체 삶의 호혜성마저 퇴색해 버렸다.
게다가 걸핏하면 님비(NIMBY) 현상에 매몰되어 국가의 원대한 포부가 좌절되기 일쑤였다. 쾌속적 변모와 무한질주가 빚어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우리의 항산(恒産)은 잊지 말아야 하고, 본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반만년 이어온 우리의 문화는 민족 정화의 소산이며, 솔밭에 부는 바람 같은 청량제이고, 21세기를 사는 문화의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병술년, 새해를 맞이하여 오늘을 따져보고 내일을 걱정하는 까닭은 다름 아니다. 문화입국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아도 우리의 조국이 튼튼한 전통윤리적 기초 위에서 튼실한 가치 문화를 꽃피울 때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될 수 있다.
우리의 진정성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는 전통문화와 어우러진 현대문화여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존재 가치가 있고 세계 속에 올올한 한국문화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곧 한류와 같은 작금의 문화현상을 영속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마리로 삼아 법고창신(法古創新)해야 한다.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든다고 할 때, 홍익인간의 정신이야말로 무궁한 문화자원이다. 홍익인간은 인간만이 중심이 되는 편협함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이롭게 되는 그런 광의의 숭고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생태학적인 개념이며, 범우주적인 상생의 개념이다. 홍익인간의 문화,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한 문화를 갈구할 때, 사람살이의 훈훈한 향내가 고향에서처럼 숨 쉬는 문화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곧 병술년을 맞는 우리의 작은 바람이다.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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