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어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 슈퍼에 들어갔는데, 그 슈퍼 카운터 앞면에 ‘뽑기 풍선’이 걸려 있었다. 그걸 보자 바로 어린 시절 운동회 날이 생각났다. 가게 하나 없는 시골에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면 강릉 시내에서 장사를 하는 아줌마가 커다란 대야 가득 갖가지 물건을 가져와 운동장 한구석에 펼쳐놓고 팔았다. 그 아줌마는 우리 소풍날도 무거운 물건을 이고 먼 길을 따라왔다.
그 많고 많은 물건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뽑기 풍선’이다. 풍선을 돈을 주고 바로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손톱만한 번호를 뽑는다. 거기에 1번에서부터 50번까지 번호가 있고, 그 번호에 맞추어 풍선을 내준다.
모두들 가장 큰 색동풍선을 뽑고 싶어 하지만, 그 풍선은 번호가 다섯 개 남아 있을 때까지 또 다른 큰 풍선과 함께 절대 뽑히지 않는다. 그쯤에서 장사 아줌마는 풍선 판을 새것으로 바꾸어 건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번호를 뽑아대도 색동풍선을 뽑는 아이는 없다. 그 풍선은 나중에 누군가 어머니한테 떼를 써 다른 풍선 서너 개 값을 치르고 산다. 어른들은 척 보면 아는 일을 우리는 몰랐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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