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24일 발표한 서울역사도시 조성 계획은 일제와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잃어버린 서울의 제 모습을 찾자는 것이다.
북악산 개방
북악산은 숲이 울창하고 경관이 아름다운데도 불구, 경호상의 이유로 38년이나 출입이 금지됐다. 북악산 개방은 지난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언젠가 북악산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해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내년 10월까지 개방되는 지역은 청와대 경호에 필요한 최소 구간을 제외한 193만평. 문화재청은 탐방로를 만들고 중간 경계용 철책은 철거키로 했다. 개방된 북악산 일대는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돼 보호, 관리를 받게 된다.
서울성곽 복원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하면서 짓기 시작한 서울성곽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으로 이어지는 도성으로 길이는 18.2㎞다. 산지는 석성, 평지는 토성으로 쌓았고 4대문, 4소문을 두었다. 세종 때 토성을 석성으로 다시 쌓았고 숙종, 영조 때 개축했다. 그러나 일제는 도시발전을 저해한다며 성문과 성곽을 허물었다. 75년부터 지금까지 10.5㎞를 복원했다. 문화재청은 복원 가능한 곳은 성을 다시 축조하되 복원이 어려운 곳은 화강암으로 도로에 성곽의 자취를 표시키로 했다. 추후 돈의문(서대문)과 소의문(서소문) 등도 복원할 예정이다.
광화문 복원
현재의 광화문은 축조 당시에 비해 동쪽으로 5.6도 틀어져 있고 원 위치보다도 14.5m 뒤로 물러서 있다. 일제는 서울을 정비한다며 광화문 앞에 길을 내고 건춘문(경복궁 동문) 북쪽으로 광화문을 옮기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소실된 뒤 68년 콘크리트 구조물로 중건됐다.
광화문은 원래 위치, 원래 각도에 따라 목조건물로 복원된다. 함께 복원되는 3,000~4,000평 규모의 월대는 왕과 신하가 경복궁을 드나들던 통로로 임금이 외국 사신을 맞기도 하는 장소였다. 해태상은 월대 끝으로 옮겨진다. 광화문, 해태상 모두 원래대로 관악산을 향하게 된다.
세계문화유산 등록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역사도시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현재 파리 교토(京都) 로마 등 135개 도시가 역사도시로 등록돼있고, 경주는 이보다 규모가 작은 역사지구로 지정돼 있다. 이삼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유네스코가 주변에 고층 건물이 있는 곳은 등재에서 제외하는 등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홍준 청장은 “고층 건물이 많지만 궁궐과 성곽 등 문화유적이 풍부해 등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 개방되는 북악산은
38년 만에 서울 시민의 품에 안기는 북악산은,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들어선 조선의 주산이다. 높이는 342m에 불과하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은 화강암 바위 덩어리가 높이 이상의 위엄을 자랑한다. 바위가 하얗다고 해서 백악(白岳)이라고도 불렀다.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울창해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대표 경승지로 인정받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조, 정조 때는 이곳에 살던 호랑이가 창덕궁까지 내려오곤 했다.
1ㆍ21 사태 이후 이웃 인왕산과 함께 주민 통행이 전면 금지됐으며, 73년에는 경계용 철책이 설치됐다. 물론 지금도 북악산 도로를 운전하며 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다.
대도시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자연 환경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곳에서 식생 분포를 조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멧돼지 노루 큰오색딱다구리 산돌새 등의 동물과 생강나무 때죽나무 엄나무 산초나무 등의 식물 군락이 발견됐다.
북악산의 대표 유적으로는 숙정문이 있다. 서울 4대문 중 하나로 북문이라고도 불렸다. 연산군 때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동쪽으로 옮겼으며, 지금의 숙정문은 75년 복원한 것이다. 태종 때 풍수학자 최양선이 “숙정문을 통행하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해 축조 18년 만에 사람의 통행을 막았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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