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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心情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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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心情민주주의'의 위기

입력
200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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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승용차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보유한 승용차보다 많다고 한다. 이걸 신문에서 읽으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바로 어제 무슨 글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신문도 좋고 학자들의 논문도 좋다. 국가간 비교 사례를 보라. 예외 없이 선진국과의 비교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와 비교하는 법은 없다. 비교 대상은 죽으나 사나 미국, 일본, 유럽이다.”

모처럼 예외를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만, 그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긴 선진국과의 비교 중독증도 무슨 큰 의미가 있어서 생긴 건 아닐 게다. 그냥 습관이다. 그 습관 때문에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포로가 되곤 한다.

●4·19등은 심정이 폭발한 시위

잠시 ‘글로벌 스탠더드’를 잊고,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보자. ‘심정(心情) 민주주의’라는 딱지를 붙여보는 건 어떨까? 심정은 외국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운 단어다. 지극히 한국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중앙대 심리학과 최상진 교수는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개념은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섭섭한 심정’‘야속한 심정’‘억울한 심정’‘답답한 심정’‘죽고 싶은 심정’‘서러운 심정’‘울고 싶은 심정’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심정은 주로 부정적 상황에서 발동한다고 평가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바로 심정이 폭발한 시위였다. ‘4ㆍ19 혁명’에서부터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주요 성과는 모두 시위의 결과였다. 한국인에게 차분한 대화와 토론의 마당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런 경험도 별로 없었다. 잠자코 인내하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일시에 ‘욱’ 하고 폭발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결정적 계기는 늘 개인의 죽음이었다. 이게 바로 ‘심정 민주주의’의 불가사의한 대목이다. 광주에도 수많은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들이 있었건만, 왜 ‘광주 학살’에서 ‘6월 항쟁’까지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 했을까? 극심한 언론통제로 그들의 죽음이 심정의 폭발을 불러오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한국은 심정의 폭발이 없으면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잘 굴러가는 사회다. 큰 흐름에서 보아 그렇다는 말이다. 선거는 늘 그 점을 입증해주는 생생한 드라마다. ‘평소 실력’보다는 그 어떤 계기에 의한 ‘심정의 폭발’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 보도상 웬만한 선거치고 ‘이변’ 아닌 선거가 드물다. 서양에서 개발된 여론조사 기법이 한국화 되지 않으면 맥을 못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를 자주 놀라게 하는 한국의 독특한 시위 문화는 바로 그런 심정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위는 심정에 호소한다. 이성에 호소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정부건 대기업이건 결정권을 가진 권력집단부터 평소 이성 알기를 우습게 알다가 막판에 ‘심정 폭발’이 일어날 때에 비로소 관심과 성의를 보이기 때문이다.

●집단이기 시위까지 심정에 호소

시위엔 절박한 생존투쟁형 시위와 집단이기주의적 ‘뗑깡 시위’가 있다. 그 중간에 ‘우는 아이 젖 더 주기 신드롬’을 겨냥한 시위가 있다. 생존투쟁형 시위를 어렵게 만드는 건 모든 시위가 심정에의 호소라는 기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집단은 옥석(玉石) 구분 기능을 포기하는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이게 바로 심정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심정 폭발’이 있을 때에 한해서 움직이는 권력집단의 오래된 관행이 척결돼지 않는 한, 폭력 시위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혁신은 바로 그런 문제를 다뤄야 한다. 한(恨)의 표현과 ‘뗑깡’을 구별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일에 투자를 해야 한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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