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천경자씨는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고 말한다. 뉴욕에서는 미술과 음악 등 온갖 예술적 활력이 힘차게 용솟음치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1970년대부터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그림들을 그려온 문화적 증인이다. 20세기 이후 예술적 중심과 명성, 문화적 화제거리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진 것이다.
뉴욕의 미술관 풍경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술관들이 미국 젊은이의 새로운 사교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술관 주요 고객이 중장년 부유층에서 20, 30대 초의 젊은 층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문화 행사의 품격
이런 추세에 맞춰 메트로폴리탄ㆍ구겐하임ㆍ휘트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은 프로그램을 가능한 한 젊은 층 취향에 맞추고 있다. 젊은이들이 사교와 예술감상을 겸해 품격 있는 미술관으로 몰리고 있다. 1987년의 일본 도쿄는 이미 세계적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문화에서 세계적 수준을 호흡하고 있었다. 긴 관람객 줄 끝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1년 간의 기억은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달콤한 것이었다. 제목이 확실치는 않으나 ‘고야와 그의 시대전’과 ‘로댕조각전’, ‘러시아 혁명과 미술전’ 등의 야심적인 큰 전시회가 열렸다.
러시아 극단이 공연한 체홉의 ‘갈매기’, 영화 ‘로자 룩셈부르크’와 ‘중국영화주간’ 등도 새로웠다. 다양한 사회주의권 예술감상은 당시 냉전시대의 서울에서라면 엄두도 못 내던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도쿄는 해방구 같은 곳이었고 대도시의 자격과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서울에서도 의미 있는 큰 전시회들이 열리고 있다.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인상파전, 마르크 샤갈전, 살바도르 달리전 등은 자랑할 만한 전시회였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대형 특별전이 19년 전의 도쿄만큼 자주 열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 겨울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마티스와 야수파 그림전이 열리고 있다. 세계미술사를 찬란하게 장식한 화가들의 전시회를 국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점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야수파, 혹은 야수주의 작품 120점이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120점이란 규모도 거대하지만, 그 중 100점이 유화인 탓에 야수파의 탄생과 변모의 흔적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인상파의 색채 관념을 뛰어넘은 야수파는 1905년을 전후해 파리를 중심으로 3년간 눈부시게 활동한 화가들이다. 마티스와 함께 모리스 드 블라맹크, 키스 반 동겐, 라울 뒤피, 조르주 루오 등도 하나하나가 큰 활자로 소개될 만한 주요 화가들이다.
전시된 그림들이 내뿜는 색채와 생명의 약동, 자유롭고 개성적인 표현, 격정적 발언 등을 보면 ‘야수주의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시작이다’ 라는 마티스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상파를 거쳐온 서양 미술은 야수파에 이르러 한층 현대성을 얻는다. 야수파 그림에서는 자기 파괴적이고 반역적인 충동이 들끓고, 그것은 마침내 입체주의ㆍ추상주의로 도약해 갔다.
야수파는 우리 미술에도 강렬한 흔적을 남겼으니, 대표적 예가 이중섭이다. 그는 고독과 가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속에 우리 회화사상 유례없이 강렬한 개성과 표현성을 지닌 ‘소’ 연작을 탄생 시켰다.
●야수파 미술의 현대적 공로
신경 쓰이는 점도 있다. 이 전시회를 다른 전시회와 싸잡아 ‘무늬만 걸작전, 알짜 빠진 거장전’이라고 한 비방성 신문기사가 인터넷 상에 떠도는 것이다.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이 기사는 전시회 주최측을 허탈하고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행여, 젊은이들이 이런 악의적 기사에 현혹될까 염려된다. 단언하건대, 내가 만난 화가와 미술 전문가들은 ‘훌륭한 전시회’라고 입을 모았다. 예술 기획행사는 물론 보도에서도 양식과 품격을 갖추는 것이 성숙한 문화 사랑의 출발선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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