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인 1월27일은 벌써 250살이 된 모차르트옹(翁)의 생신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았으면 엄청난 곡을 나이만큼 작곡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엔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이처럼 떠들썩하게 주목 받은 게 처음은 아니다.
1991년 서거 200주년에도 모차르트 초콜릿은 물론 모든 문화행사에 그의 이름이 꼭 들어갈 정도였으며, 전 세계 음악인은 그를 추모했었다. 이처럼 수많은 그의 추종자들은 아마도 그의 결혼기념일이나 오페라 작곡 기념일도 만들어서 숫자가 10단위로 떨어지는 해마다 파티를 열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왜? 왜 하필 모차르트일까? 그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호들갑이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가 모차르트가 아니냐고 말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영화 ‘아마데우스’가 만들어진 사실이 이를 증명한단다. 사실 이 영화의 영향은 엄청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리에리가 정말 모차르트를 죽인 줄로 아는 거 보면 말이 필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가 베토벤보다 위대하냐는 질문에는 모두들 분개한다. 예술가끼리 어떻게 위대성을 비교하냐는 말. 그렇다면 모차르트의 생일에 유독 난리 칠 만한 근거도 없지 않은가?
흠, 사실 음악인으로서 내 주위엔 모차르트를 싫어하는 사람을 더 많이 봤다. 이런 무례하기 짝이 없는 나의 지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음악이나 예술은 제 아무리 형식적, 논리적인 탑을 쌓아올렸다 치더라도 취향이라는 관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현상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감동은 없듯이 모차르트에겐 분명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그것들이 있다.
첫번째 이유는 그의 음악이 모두가 이해하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결코 따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부분에 그는 자신만의 재치와 기교를 사용했고 이것이 관객을 흥분시킴과 동시에 연주자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엔 언제나 “음표가 너무 많아”라는 말이 따라다니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그가 이런 면에서 당대 최고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그의 음악에 묻혀 아류 소리를 들었고 살리에리 역시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그를 유일하게 능가했던 사람은 스승 하이든이나 꼬마 베토벤 정도였으니까. 세번째 이유는 그가 가장 예술가답게 사는 표준을 제시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마치 비극적으로 요절하는 것이 천재 예술가들에게 유행이 돼버린 것처럼.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보다 더 중요한건 그의 작품이다. 모차르트를 포함한 위대한 예술가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작품으로 그 위대함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생애나 사생활이 아닌 그의 작품을 축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생일은 250주년이든, 251주년이든 축하 받을 이유가 산더미 같다.
사람들은 다른 행동이 아닌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그를 기억하는 것이다. 27일은 전 세계적으로 모차르트 콘서트가 열린다. 당신도 그의 관객이 되어보자.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조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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