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출범할 당시 등단 5년차의 막내 회원이었던 정희성(61) 시인이 그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신임 이사장이 됐다.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회원 명부에 이름을 거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했던 시절 아닙니까. 햇병아리 교사(서울 숭문고)였던 제가 내년 2월이면 정년을 맞고, 그 새 작가회의는 30년을 넘긴 우람한 조직으로 자랐습니다.”
그는 이 시대 ‘민족문학’ 정신의 필요성에 대한 신념으로 이사장 취임의 입장을 밝혔다. “‘민족문학’이라는 명칭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습니다. 국제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새 천년을 맞은 이 세기도 테러와 전쟁으로 시작됐습니다. 한반도 주변에도 여전히 야만의 그림자가 어룽거리지 않습니까. ‘민족문학’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는 “다만 회원들의 의견을 들어 작가회의 명칭을 변경할지 여부는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초 예술인에 대한 창작 지원과 한국 문학의 세계화 등을 위해 이사장으로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여러 맥락에서 그 같은 문제들이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많이 미흡합니다. 그 실정을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1년 평양에서 열린 8ㆍ15 평화축전에 도종환, 김준태 시인 등과 함께 남측 대표로 참가한 바 있는 그는 남북작가대회 2차 대회와 관련해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재외동포 참여문제 등 현안에 대해 착실히 검토하고 논의한 뒤 차근차근 진행할 생각이며, 굳이 언제 열겠다는 데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70년 등단, 74년 첫 시집 ‘답청’을 낸 이래 ‘저문 강에 삽을 씻고’(78년)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91년) ‘시를 찾아서’(2001) 등 지금껏 4권의 시집을 냈다. 그는 “퇴직하기 전에 한 권 더 묶어서 동료 선생님들께 선물하는 게 당장의 개인적인 목표”라고 했다. 바빠져서 시 쓰기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언제는 뭐 시간이 없어서 시를 못썼나요?”라며 웃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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