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1913~1975)의 시세계는 예술과 철학의 경계에 걸터앉아 있다. 한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철학적이라 규정하거나 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예술적이라 판정하는 것이 반드시 상찬일 수는 없다.
이성의 규칙과 감각의 규칙은 자주 맞버티기 마련이어서, 그 둘을 한꺼번에 끌어안으려는 시도는 얼치기 예술이나 반편이 철학을 낳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탐미의 끝머리와 치지(致知)의 첫머리를 이어 거룩한 매듭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사의 높다란 정신들이 늘 지향해온 이상이었다. 김현승은 그런 매듭 하나를 지었다.
김현승의 시세계를 철학적이라 판단할 때, 그 철학은 압도적으로 기독교 철학이다. 오늘 우리가 살필 그의 세 번째 시집 ‘견고한 고독’(1968)에서도 마찬가지다.
‘견고한 고독’과 그 다음 시집 ‘절대고독’(1970)에서 시인이 두드러지게 추구한 고독의 존재론과 인식론을 들어, 이 시집들을 시인이 어려서부터 받아들여온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부터의 한시적 일탈로 보는 견해도 있다는 점을 미리 지적해두는 것이 좋겠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시인은 작고하기 두 해 전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뒤 다시 기독교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런 견해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시집 ‘견고한 고독’의 표제시에서 화자가 “모든 신(神)들의 거대한 정의(正義)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주며”라고 말할 때, 거기선 유일신이든 잡신이든 어떤 (유사)절대적 존재에 대한 의존을 마다하고 제 두 다리로, 홀로, 이 세상을 버텨내려는 결기가 읽히기 때문이다.
‘제목(題目)’이라는 별난 제목의 시에서 화자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나아가 화목할 것인가/ 쫓김을 당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네게로 흐르는가/ 너를 거슬러 내게로 오르는가”라며 회의와 우유부단의 포즈를 취할 때도, 거기선 ‘이교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다.
얼핏, 이들 화자의 말투는, 두 번째 시집 ‘옹호자의 노래’(1963)에 실린 ‘가을의 기도’의 화자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고 말했을 때의 그 ‘빈 마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고독의 추구’로 응결된 내성(內省)의 심화를 (화자나 시인이) 기독교 바깥으로 내딛는 발걸음으로까지 여기는 것은 지나치다. 이 시기의 김현승은, 차라리, 교회라는 제도에서 벗어나 단독자로서 신과 마주했던 역사상의 어떤 기독교도들을 닮았다. 그렇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도, 표제시 ‘견고한 고독’의 화자가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이나,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또는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따위로 제 고독을 형상화할 때, 그의 표정은 신에게서 달아나려는 이교도의 것이라기보다 외려 예수의 외로움과 고행을 본받으려는 진짜배기 신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기실, ‘견고한 고독’에서 더러 까마귀(시인이 보기에 이 새는 ‘영혼의 새’다)로 형상화되는 고독의 추구는 이 시집에서 난데없이 시동을 건 것이 아니다. 위에서 그 첫 연을 인용한, 전형적인 기독교 시 ‘가을의 기도’의 화자도 그 마지막 연에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니까, 비록 개개 시편마다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김현승의 고독은 신이라는 무제약적 존재에 대한 귀의 ‘때문에’(‘에도 불구하고’나 ‘에서 일탈해서’가 아니라) 생긴 고독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살아낸 세상에선 신의 소맷자락을 잡는 일 자체가 고독을 전제하는 일이었다. 시인이 ‘견고한 고독’ 후기에서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내게는 즐거움이 아니라 근심이며 하나의 심각한 병”이라고 말했을 때, 이 진술은 신을 부정하는 맥락에서 제출됐다기보다 신을 따르는 것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견고한 고독’이라는 표제에서 이미 선명하거니와, 이 시집에서 고독은 보석이나 순금이나 차가운 돌처럼 흔히 단단한 것으로 표상된다. 이 시집의 화자들에게 단단함은 깨끗함이나 차가움과 통한다. ‘참나무가 탈 때’의 화자는 참나무와 보석, 단단함과 깨끗함을 병렬시키고 있고, ‘돌에 사긴 나의 시’의 화자는 “아름다운 것들은 피가 없다!”는 도발적 선언 끝에 차가움과 깨끗함, 견고함을 나란히 늘어놓고 있다.
특히 보석으로 상징되는 단단함의 이미지는 이 시집 전체에 널따랗게 퍼져 있다. 그 단단한 것들은 시간의 썩은 흙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언젠가 되살아날 낡은 것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집의 화자가 사랑하는 것은 “낡은 악기와 같이 오랜 세월에도 휘지 않는/ 오랜 술과 같이 묵은해를 더욱 달게 만드는/ 낡은 제목들의 음향과 그윽한 향기”(‘나의 심금을 울리는 낡은 제목들’)다.
‘견고한 고독’에 실린 몇 편의 시는 그 화자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 한 편이 ‘시의 맛’이다. 이 시의 화자는 지인(知人)들과의 멋진 만남을 마다하고 시를 쓰는데, 자신의 시를 통해 “멋진 너희들의 사랑엔/ 강원도풍의 어둔 눈이 나리고,/ 내 영혼의 벗들인 말들은/ 까아만 비로도 방석에 누운/ 아프리카산 최근의 보석처럼/ 눈을 뜬다./ 빛나는 눈을 뜬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
이 자부심은, 이 시집의 연장선 위에 있다 할 ‘절대 고독’의 자서(自序)에서 시인이 “고독 속에서 나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되고, 나를 거쳐 인간 일반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의 대사회적 임무까지도 깨달아 알게 된다”고 말했을 때의 그 자부심과 닿아 있을 것이다. 그에게 시를 쓰는 것은 고독의 한 실천 형식이었다. 만년의 시인은 “나의 생애에서 시를 쓸 때만큼 사무사(思無邪)하려고 몸부림친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술회한 바도 있다.
시인이 이렇게 시나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내비친 또 다른 예가 ‘형설의 공’이다. 이 시는, 차가움 대신에 뜨거움을 찬미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집의 여느 시들과 다르다.
긍정적 맥락에 배치되는 것이 예사인 ‘형설의 공’이라는 말을 소극적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 시의 화자에 따르면, “반딧불을 모아/ 눈을 비췰 수는 있으나,/ 눈을 녹일 수는 없”고, “그 눈을 모아/ 너의 언어를 읽을 수는 있으나,/ 너의 언어를 태울 수는 없다.” 그는 “형설로 배운/ 너희들의 언어”를 비웃는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 이르러, “왜 타지 못할까?/ 왜 태울 줄을 모르는가?/ 너희들의 언어는 기교의 가지 끝/ 서릿발로 치운 이 겨울에......”라며 기교로서의 언어를 타박한다.
이런 말을 하는 화자를 등장시키는 시인이 기교주의자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김현승은 기교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시에서는 대체로 영혼이랄까 정신이랄까 관념이랄까 하는 것이 기교를 이긴다. 그러나 그는 기교에서도 뛰어난 시인이었다. 특히 생전의 마지막 시집 ‘절대 고독’에는 단지 그 언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밑줄을 긋고 싶은 시행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의 마음’), “내게는 처음이 될지도 모르는/ 이 마지막 봄비에 소리없이 젖어보고 싶다”(‘내 마음 흙이 되어’), “죄를 다시는 저지를 수 없는/ 나의 마른 손이여”(‘겨울 실내악’), “살기 위하여 죽기도 하지만/ 죽기 위하여 살기도 한다./ 목적은 옳을 뿐만 아니라,/ 목적은 눈물겨웁다”(‘목적’) 같은 구절들이 그렇다. 그가 지난 시업(詩業)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며 “마지막 침묵을 지키는” “언어의 과부”(‘신년송’)가 되겠다고 선언할 때조차, 그의 언어는 의연히 절창이다.(같은 한자를 포함하는 ‘절필’과 ‘절창’은 왜 반대방향으로 치달을까?)
김현승이 목월보다 세 살 손위고 미당보다도 두 살 손위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시를 읽을 때, 독자들은 이 시인의, 특히 그 후기 작업의 첨예한 현대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김현승을 딱히 주지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는 우리 시단에 드문, 진정 지적인 시인이었다.
▲ 영혼과 中年
바람에 불 일던 나의 나이,
지금은 창문 앞 잔디처럼
깎이었네,
내 코 밑 수염이 되어
이제는 잔잔히 깎이었네.
바람에 물 일던 나의 나이,
지금은 연액(緣額) 속
동정호(冬庭湖)의 치운 쪽빛같이
고요히 머무네,
고요히 머물 수 있네.
가락엔 으레이
눈물을 섞던 나의 나이,
이제는 쑥스러워
휘파람도 못 부네
휘파람도 못 부네.
산그늘도 하루를
반(半)이나 남아 지웠네.
오늘도 스틱을 휘청이며 걷는 종점 부근......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스치는
나의 영혼-- 식물성 나의 영혼일세.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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