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숨겨져 있던 지뢰가 불을 뿜는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날아 오는 포탄이 공중을 가르고 머리 위에서도 수없이 쏟아져 내린다.
파키스탄_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에서 미군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 현장이다. 미군은 파키스탄과 손잡고 오사마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히리 등 알 카에다 핵심 인사들을 잡겠다며 이 지역을 융단 폭격하고 있다. 미군은 수 만 명 병력을 투입해 이 잡듯 뒤지고 있지만 목표물은 꼭꼭 숨어버린 지 오래다.
워낙 지형이 험준한데다 파키스탄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현지 주민들이 아프간의 전 정권이었던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감싸주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도 어렵다.
뉴욕타임스는 22일 다국적 테러리스트 수 백 명이 아프간 국경선을 따라 약 800㎞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무장세력들이 독자적으로 수감시설을 만들고 정부에 동조하는 사람을 공격해 지난 한해 동안 108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했다.
미군 관계자도 “국경 산악지역이 무법천지가 되고 있다”며 “미군과 파키스탄 정부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토로했다. 앞서 19일 빈 라덴은 14개월 만에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는 육성 테이프를 공개, 미군의 힘을 빼놓았다.
조급해진 미국은 최근 들어 이 지역에 더 많은 포탄을 쏟아붓고 있으나 애꿎은 파키스탄 민간인들만 희생양을 만들었다. 13일 국경지대 작은 마을 다마돌라에서 일어난 미군의 미사일 발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미군은 “알 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이슬람 명절 에이드를 맞아 이 마을에서 만찬을 갖는다”는 중앙정보국(CIA)의 첩보에 따라 무인항공기를 띄워 헬 파이어 미사일로 폭격했다.
미군은 처음“알 자와히리는 물론 알 카에다 핵심요원 7명이 함께 죽었다”며 발표했지만 20일 알 자지라 방송이 알 자와히리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미군은 잘못된 폭격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여자 5명, 어린이 5명을 포함해 민간인 2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키스탄에서는 매일 수 천명 이상이 참여하는 반미시위가 2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도 미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샤우카트 아지즈 총리는 22일 CNN과의 회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으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3일 “파키스탄 국민들은 미국에 무작정 협조하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행정부에 불만을 갖으면서도 미국의 경제 원조 때문에 참았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고로 반미 감정이 폭발했고 이를 신경써야 하는 무샤라프 대통령도 미국과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