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재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혜경 푸른숲 대표)가 지난해 말 실시한 사재기 조사 결과에 대해 해당 출판사가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태가 ‘진실 게임’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당초 출판인회의가 사재기로 지목한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외했던 교보문고도 최근 당초 결정을 번복, 갈등은 더 복잡해졌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급기야 문화관광부가 주도하는 ‘출판유통심의위원회’까지 소집될 전망이다.
출판인회의는 사재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2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그간의 조사과정을 설명하고, 해당 출판사는 물론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재기로 지목한 책을 1년 동안 제외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교보문고에 대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김형성 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시아출판사 대표)은 “지난해 10월1일부터 두 달 동안 서점 감시 활동을 벌여 5개 출판사의 사재기를 확인했다”며 “이 중 3개 출판사는 바로 사재기를 시인했고, 나머지 2개 출판사는 ‘다른 곳도 다 하는데 왜 우리한테만 그러느냐’ ‘사재기 한 책이 몇 권 안된다’는 식으로 항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점업계에 따르면 출판인회의가 사재기로 지목한 책은 ‘세계 명화 비밀’(생각의나무 발행) ‘쏘주 한잔 합시다’(큰나) ‘위트 상식사전’(보누스)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밝은세상) ‘오 메시아 NO’(아루이프로덕션)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27일 주요 온ㆍ오프라인 7개 서점 관계자와 모여 ‘사재기’로 밝혀진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향후 1년간 삭제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출판사와 교보문고측 설명은 다르다. 생각의나무 박광성 대표는 “자사 도서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사재기를 한 적이 전혀 없다”며 “‘세계 명화 비밀’ 98부를 2개월 동안 사재기한 혐의는 대략 일주일에 10여 권의 책을 사재기했다는 것인데 이것으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바꿀 수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동업자가 동업자를 수사하듯 하는 이 같은 조사는 부당하다”며 “전문가 등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공정한 제3의 상설 조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큰나의 최명애 대표도 “출판인회의의 조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사재기 조사의 근거는 물론, 해당 조사기간에 베스트셀러 30위권 내의 모든 책에 대한 조사내용을 공개하도록 요구했으나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내내 곤혹스러웠던 교보문고는 사재기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외하라는 출판인회의의 요청을 3주 정도 수용하다 19일부터 해당 책들을 다시 목록에 포함시켰다. 남성호 홍보이벤트팀장은 “교보문고는 사재기 혐의가 있는 도서에 대해 사재기의 심증이 있는 판매량을 제외한 나머지 판매량을 집계해 베스트셀러 목록을 작성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애초에 해당 책을 목록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그는 “출판인회의가 지목한 5개 출판사 모두 사재기 혐의를 시인했다고 해서 협조한 것인데, 이후 일부 해당 출판사들이 반발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자체 판단으로 목록을 작성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출판인회의는 교보문고의 결정이 ‘사재기를 온존ㆍ유지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박영률 커뮤니케이션북스 대표는 “출판인회의는 사재기를 출판유통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행위로 보지만,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은 사재기를 마케팅 행위의 일환으로 본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출판인회의가 진실 규명을 위해 문화관광부가 주도하는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키로 하면서 ‘교보문고의 사재기 묵인 및 조장에 대한 실태 파악’을 적시한 것도 이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간행물의 건전한 유통질서 유지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문화부 등 관계 기관 담당자와 출판업계 대표자, 학계 전문가 등 15인 이내 인원으로 문화부장관 산하에 구성된다. 문화부 고나계자는 “위원회가 구성되면 사재기 조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사재기가 사실로 드러나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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