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중요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이 자신의 심경을 담아 쓴 글의 제목이다.
고난과 진실이라니, 그것도 이들을 벗과 등대로 삼는다니, 정말 묵직한 제목이다. 여러 대권주자가 살아온 여정을 생각할 때 이 같은 글과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군사독재에 항거해 형극의 길을 걸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사학법 대치속 이제오 당선
그러나 놀랍게도 이 글을 쓴 사람은 김 의원이 아니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이다. 고난과 진실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지만, 박 대표는 분명히 이 같은 글을 최근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올렸다.
즉 박 대표는 얼마 전 이 같은 글을 통해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 무효화 투쟁과 관련해 “지금 나의 길이 어렵고 힘들어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끝까지 견디어 나갈 것”이고 “소신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욕을 안 먹을 수 없으며 그 비난은 가슴에 다는 훈장 이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론이 사립학교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지만 자신의 입장이 진실이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진실을 지키기 위한 고난의 길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고난이란 주관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야만적 고문과 싸워야 했던 김 의원 정도라면 모를까, 최근 한나라당이 벌이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투쟁이 고난이라니 다소 낯뜨겁게 들린다.
어쨌든 문제는 왜 박 대표가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제목의 글을 올렸느냐는 것이다. 그 해답은 박 대표가 반 박근혜 파의 대표 선수인 이재오 의원이 자신의 충실한 지지자이자 사학법 관련 투쟁에서 강경론자인 김무송 의원을 누르고 원내대표에 당선되고 사학법 투쟁 방식의 변화를 시사한 바로 다음날 이 글을 올렸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최근 들어 여론조사 결과 자신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여론의 등원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내 경선에서도 이 의원이 당선되자 위기감을 느낀 박 대표가 배수진을 치고 강경론 고수 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특히 이번 경선에서 주목할 것은 예상과 달리 이재오 의원이 박빙의 승부도 아니고 넉넉한 표차로 김 의원을 누르고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박 대표가 서슬 푸르게 외골수의 강경장외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반대의견을 밝힐 수가 없어서 그렇지 한나라당 의원 내에서조차 박 대표 식의 인식과 대응에 반대하는 온건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즉 이번 경선 결과는 박 대표에게는 엄청난 위기일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이 구제 불가능한 골수 수구정당이 아니라 합리적인 보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지만 희망의 근거이다. 나아가 한나라당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구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에도 희망의 근거이다.
●박근혜 위기는 역설적 희망
문제는 박 대표가 당 내외 지지 하락에 대해 진지하게 자기성찰을 하고 자신의 노선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지키기 위해 비난과 고난을 훈장으로 알고 가겠다는 식의 엉뚱하고 위험한 순교자적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 대표가 한 단계 높은 정치인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잘못된 순교자적 태도를 벗어나 민심과 당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노선을 교정해 나가야 한다.
물론 박 대표가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 만년 야당의 극단적인 소수 이념정당의 지도자로 남고 싶다면 그것은 박 대표의 자유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확실한 것은 박 대표의 위기가 한나라당과 한국정치의 희망의 근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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