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훈(家訓)이라고 하면 근면, 정직 등등 간단한 몇 마디 좋은 말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원래 가훈은 책 이름이었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안지추(顔之推)가 저자이다. 그는 대단한 명성을 지닌 학자였으며, 유교와 불교를 합일시한 사상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안진경과 안사고가 그 후손이다.
안지추의 가훈은 안씨 가훈이라 불리는데, 총 20편 약 5만 여자로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자신의 생각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가 가훈을 남긴 데는 사연이 있다.
그는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인자하기만 하지 위엄이 없는 형이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멋대로 생활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그가 24세에 겪은 조국의 멸망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간의 포로생활을 시작으로 서위, 북제, 북주, 수를 거쳐 생을 마감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해 느낀 모든 것들을 가훈을 통해 후손들에게 말하려 한 것이다.
다음은 재미있게 읽었던 대목이다. 그는 살면서 되도록 옛 분들의 가르침을 받들되, 기록되지 않은 부분들은 융통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부모님이 진지를 드시다 목이 메어 돌아가셨다고 하더라도 음식을 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서위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이다. 같이 끌려간 귀족들은 공리공론에만 익숙할 뿐, 세상의 실무에는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자들이었다. 다들 귀하게 자라 노동은 못하려니 했다. 그래도 입들은 살아있어 문서정리라도 할 줄 알았더니, 심지어는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자가 태반이었다. 양나라 귀족 포로들을 하사받은 서위의 귀족들은 그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그들에게 공밥을 먹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안지추는 글을 읽고 쓸 수 있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무엇이든 기술하나는 익혀야 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 가운데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 공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무릇 배움이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봄에는 그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그 열매를 얻는 것이니, 서로 토론하고 글을 짓는 것은 봄의 꽃이요, 몸을 닦고 행동을 이롭게 하는 것은 가을의 열매이다.” 이른바 ‘춘화추실(春華秋實)’이란 말로 공부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개괄하고 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안지추의 말대로라면 이제 곧 올 새봄부터 부지런히 책을 읽어 가을에 열매를 거두어야겠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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